은행들은 지난 10월 말 본격적으로 시행된 계좌이동제에 대비해 고객잡기에 분주하다. 우리은행은 계좌이동제에 가장 발빠르게 대처한 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지난 3월 주거래 통장인 ‘우리 웰리치 주거래 고객 상품 패키지’를 출시해 시장 선점에 우위를 차지했다.
◇은행 최초 ‘혜택 이월제’ = 기존에 우대 혜택을 받기 위해선 대출 및 예금 잔액을 일정 기간 이상 유지해야 하고, 보유 상품 수를 늘리거나 신용카드 사용 실적이 있어야 하는 등 복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조건을 단순화해 급여 및 연금이체, 관리비 및 공과금 등 자동이체, 우리카드 결제계좌 등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주거래 요건 충족시 당·타행 수수료 월 최대 15회까지 면제받을 수 있는 입출식 상품으로, 금융권 최초로 무제한 이월제를 도입해 미사용한 면제 횟수에 대해서 다음달로 이월돼 유효기간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주거래 카드’는 6개월 동안 300만원 이상 사용하는 경우 카드포인트로 1만5000포인트씩 연간 3만포인트가 적립되는 신용카드로, 일상생활에서 주로 사용하는 통신, 주유, 학원, 택시, 병원 등 생활밀착 업종에 대해 사용 금액의 1.5%를, 일반 업종에 대해서는 0.5%씩 카드포인트를 적립한다. 특히 이 카드 한 장에 OK캐시백, CJ ONE 포인트 등 8가지 멤버십 포인트를 자동으로 적립할 수 있다.
‘우리 주거래 신용대출’은 소득은 없으나 본인 명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나 본인 명의 카드가 결제되는 주부 등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상품이다. 별도의 소득서류 제출 없이 영업점 및 인터넷·스마트뱅킹을 통해 500만원까지 신청이 가능하다.
주거래 요건을 유지하면서 연체없이 정상 사용할 경우 6개월마다 100만원씩 최대 1000만원까지 증액할 수 있고, 1년간 연체없이 사용하고 주거래 요건을 유지하면 대출이자 납입금액의 1%에 해당되는 금액을 이자납입 통장으로 적립해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끝장회의’ 산물 = 주거래 패키지의 개발에 참여한 우리은행 개인영업전략부 개인상품팀 이영호 과장은 상품 설계 과정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과장은 “상품 개발 과정 중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끝장회의를 위해 독립된 회의실에서 진행했고, 회의실 안에 시계가 없다 보니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오후 4시, 새벽 2시 등 늦은 시간까지 열띤 논의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자주 이용하는 회의실에선 상대적으로 빠르게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 ‘인터스텔라의 방’이라고 이름을 지어 줬다고 한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주거래 고객을 다시 분류하는 일이었다. 이 과장은 “새로운 주거래 고객 정의로 인해 기존의 모든 고객 데이터 정보를 재정비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며 “기존 우리은행을 이용 중인 2000만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주거래 요건 충족 여부를 일일이 전산에 반영시키기 위해 전산부와 많은 협의와 갈등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계좌이동제를 겨냥한 우리은행의 주거래 패키지에 대해 고객은 물론 업계에서도 입소문이 퍼졌다. 실적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특히 계좌이동제와 관련해 모든 은행들이 우리은행의 새로운 주거래고객 개념을 사용하며, 은행권 무한경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시중은행의 한 은행장은 “우리은행은 선제적으로 계좌이동제 대응상품을 만들었는데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라고 상품개발부 부장에게 질책하기 했다고 한다.
◇주거래 통장 개념을 정립하다 = 이 과장은 계좌이동제에 대비한 사전 설문조사에서 고객이 주거래은행을 옮길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기존 혜택의 소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각종 부가 혜택이 고객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 과장은 어떤 혜택을 고객에게 주면 기존 고객 이탈을 방지하고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가계 수입과 지출을 우리은행으로 집중한 개인고객이 우리은행의 주거래 고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예금 잔액이 큰 고객보단 충실하게 우리은행을 통해 가계 소득과 지출을 관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거래 통장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이 과장은 “기존 주거래 고객의 명확한 개념이 없어 은행에서는 거액 예금 또는 거액 대출 고객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고객은 급여이체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생각한다는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발팀은 우리은행으로 급여·연금을 입금하면서 통신비, 아파트관리비 등의 자동이체와 신용카드(체크카드 포함) 결제계좌로 사용하는 고객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