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오지 않지만 눈 이야기를 더 해보자. 눈에 관한 글로는 독문학자였던 수필가 김진섭(金晉燮•1903~?)의 ‘백설부(白雪賦)’가 인상 깊다. 1939년에 발표된 이 글은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라고 눈을 예찬하고 있다.
내리는 눈을 어떻게 묘사할까? 눈은 시심을 자극한다. 중국 동진(東晉)의 재상 사안(謝安)이 아이들에게 “백설이 분분히 내리는 게 무엇과 같으냐?”[白雪紛紛何所似] 하고 물었다. 형의 아들 호아(胡兒)는 “공중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비길 만합니다”[撒鹽空中差可擬]라고 했다. 그러자 질녀 사도온(謝道韞)이 “버들솜이 바람에 나는 것만 못합니다”[未若柳絮因風起]라고 했다. 사안이 질녀를 칭찬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에 나온다.
조선의 선비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1579~1657)는 ‘병중에 눈을 만나’[病中遇雪]라는 시에 사도온의 말을 인용했다. “육화가 날아 이리저리 흩뿌리니/ 보이는 곳마다 기이한 자태 각각일세/바람에 춤추며 날리는 버들솜이 뜰을 채우는 듯/나무에 가득한 배꽃이 유달리 환히 핀 듯(하략)”[六花飛飛斜更橫 奇姿看處各殊形 因風柳絮盈庭舞 滿樹梨花特地明]
‘나무에 가득한 배꽃’은 당(唐) 시인 잠삼(岑參)의 ‘백설가송무판관귀경(白雪歌送武判官歸京)’에서 따온 표현이다. “대지에 북풍이 세차게 불어 백초가 꺾이니/오랑캐 하늘 팔월에 눈이 날린다/홀연 하룻밤 새 봄바람 불어와/천만 그루 나무에 배꽃이 핀 듯하네”[北風捲地白草折 胡天八月即飛雪 忽如一夜春風來 千樹萬樹梨花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