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에세이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 책은 직접 여행뿐만 아니라 간접 여행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다 보면 몸은 이곳에 있지만 먼 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이곳을 꼭 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기를 쓴다는 것, 기차 여행의 즐거움, 위업을 이룬 여행들, 먼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를 위한 규칙, 위험한 장소들, 행복한 장소들, 매혹적인 장소들 등 모두 25개의 주제는 여행서 저자의 평가뿐만 아니라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행은 언제나 정신적 도전이며 가장 힘든 순간조차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여행의 기쁨’과 그것에 대한 글들의 모음집을 제공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다룬 1장은 저명한 인사들이 여행을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여행은 마음의 상태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이국적인 곳에 있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여행은 거의 전적으로 내적인 경험이다.” 이렇게 여행을 정의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순간순간이 여행 중임을 뜻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서정적인 단상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히 구체적인 정보들이 책에 담겨 있다. ‘세계의 중심’이란 제목을 단 2장에는 오늘날 관광객들이 그리스인의 델피 신전을 여행할 때 반복적으로 듣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곳이 ‘세계의 배꼽’인 옴팔로스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지구의 또 다른 배꼽들의 목록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중국 사람들도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페루 사람들은 쿠스코를, 예루살렘 사람들은 알 아크사 사원을, 멕시코 사람들은 파츠쿠아로 호수에 있는 파칸다 섬을 세계의 배꼽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가진 매력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이제껏 발간되었던 저명한 여행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차 여행의 즐거움’을 다룬 3장에서는 11권의 특별한 기차 여행서와 핵심 내용을 소개한다. 서머셋 모옴이 태국의 기차역에서 느낀 점을 기록한 ‘응접실의 선사’(1930)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째서 작가는 기차 정거장에서 그가 원하는 만큼의 많은 느낌들을 얻을 수 없겠는가? 펜실베이니아 정거장에는 뉴욕의 모든 신비가 있고, 빅토리아 역에는 음울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런던의 광대함이 있다.”
‘완벽한 현실 도피를 위한 여행의 규칙’을 다룬 4장은 그가 여행을 하면서 내내 존경해 온 여행가이자 작가인 더블라이머피를 소개한다. 그녀가 펴낸 ‘현실 도피를 가능하게 하기’에는 9가지 조언이 실려 있는데, 여행할 나라를 선택할 때에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을 확인한 다음에 그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는 일, 지나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일, 언어장벽에 위축되지 않는 일, 주의하되 소심하지 않기 등은 오늘날에도 유용한 조언이다. 떠날 수는 없지만 떠난 것보다 훨씬 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멋진 여행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