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혼맥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1960~1970년대 정치 권력을 시작으로 점차 관료, 법조, 언론 등으로 정략의 끈을 이어간다. 대표적으로 이후락 전 중정부장의 차남과 5남이 각각 한화·SK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장남이 삼양인터내셔널과 연결된 것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엔 권력의 중심이 자본으로 옮겨감에 따라 정관계 가문의 인기가 떨어지고 성장 배경이나 문화적인 공감대가 유사한 재계 내에서의 혼사가 활발해졌다.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 한솔 고문이 조운해 전 고려병원 이사장과, 차녀 숙희씨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동생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했다.
이러한 재계의 혼맥은 최근 들어 다시 한 번 변화하고 있다. 기득권의 지극히 폐쇄적인 혼맥 구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해진데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재계 3~4세의 열린 사고방식의 영향이 크다. 또 이러한 혼맥으로 더는 특혜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정도로 사회가 발전했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을 들 수 있다. 금호가(家)가 ‘대한민국 재벌가 혼맥은 금호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재계에서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지만, 박 부사장은 이와 별개인 듯 연애 결혼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박 부사장은 이대부속초등학교, 신사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미국 MIT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그는 중학교 동창인 김현정씨와 대학 입학 후 6~7년 연애를 한 뒤 결혼해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범 삼성가의 이경후 CJ오쇼핑 과장도 아버지처럼 연애 결혼했다. 이 과장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유학 중 정종환씨를 만나 2008년 결혼했다. 정씨는 미국 씨티은행과 모건스탠리 출신이며 현재 CJ아메리카에서 근무 중이다.
이 과장의 아버지인 이재현 CJ 회장은 고려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재학생이던 김희재씨와 미팅으로 만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부녀가 다른 재벌이 아닌 비교적 평범한 가정의 배우자를 만나 연애결혼을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과거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임우재씨(현 삼성전기 부사장)와 양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99년 결혼해 화제를 낳았으나, 현재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범 현대가의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는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한 신성재씨(전 현대하이스코 사장)와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지난해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