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기업가가 바뀌면 길이 보인다

입력 2015-09-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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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동반성장이 기업경영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동반성장 관련 전담부서가 있을 정도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새로운 혁신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지금도 동반성장에 대한 공격은 지속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활력을 죽이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하고, 나아가 자본주의에 위배된다는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보장해야 하는데 동반성장은 기업의 이익 극대화에 저해되는 것이니 자본주의와 반대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익 추구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익 추구를 위해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것은 탐욕이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얼마 전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드러난 롯데의 ‘갑’질과 같은 부당한 관행이 교정되지 않는 한 한국 경제가 양극화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는 요원하다. 고객과 노동자, 협력업체에 성과가 합당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반성장의 한 모습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무엇보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의지가 중요하다. 법적 강제력은 항용 편법의 길을 내지만 기업가의 의지는 새로운 혁신의 길을 만든다. 동반성장에서는 이런 기업가들의 의지가 근원적인 힘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협력업체인 딜러사와의 동반성장을 위한 BMW그룹 코리아의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BMW그룹 코리아는 2006년 독일 BMW그룹 본사에 판매법인의 딜러사 수익성을 성과평가시스템(BSC: Balanced Score Card)에 반영할 것을 요청한다. 당시 BMW그룹은 전 세계 판매법인 평가항목에 딜러사의 수익성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BMW그룹 코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딜러사를 핵심 파트너로 판단한 것이다. BMW의 판매법인은 생산한 자동차를 도매로 딜러에게 판매하고, 딜러가 고객에게 소매로 판매한다. 따라서 BMW의 차를 고객과 대면해 파는 딜러들이 흑자를 내야 BMW의 가치와 철학이 시장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당시 BMW그룹 코리아의 이러한 제안에 BMW그룹 판매 총괄 사장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딜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할 뿐인데 그 사람들의 수익성을 당신이 책임지는 것이 맞는가?”

그러나 당시 BMW그룹 코리아 사장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제품뿐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팔아야 한다. 딜러가 BMW의 가치를 느껴야 그 가치를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며 제안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판매법인 평가항목에 딜러사의 수익성이 포함된다. BMW그룹의 이러한 결단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GM 등 미국 자동차 회사들과는 다르게 딜러와의 공고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가장 빨리 실적을 회복하는 전기가 되었다.

당시 국내 수입자동차 업계에서 딜러사의 수익성 악화는 큰 화두가 되던 상황이었다. 딜러사를 파트너가 아닌 ‘을’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고, 실적을 위해 딜러사에 밀어내기 식으로 차를 파는 일이 많았다. 반면 BMW그룹 코리아가 딜러사의 수익성을 중요 평가지표로 설정하자 성과는 오히려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특히 변동이 심하던 딜러사들의 수익성이 확연히 안정되었다. 새로운 모델을 도입했을 때 수익성이 급격히 상승한다거나 경기가 악화했을 때 급격히 하락함으로써 발생하는 수익 변동성이 완화된 것이다. 그 결과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연속 모든 딜러사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우리는 BMW그룹 코리아의 사례에서 동반성장을 위한 기업가의 의지와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목전(目前)의 이익 극대화를 통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와 협력업체, 고객의 이익을 희생해 가면서 그 회사의 이익이 지속적으로 극대화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BMW그룹 코리아의 결단이 어떤 성과를 낼지 우리 기업가들의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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