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부정청탁, 지위를 이용한 갑질 횡포…. 국회의원들의 현주소다.
공무원의 경우 부정부패 등 각종 불법 사안이 적발되면 사법당국의 처벌과 별개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감봉, 면직 등의 징계를 받는다. 징계를 받게 되면 곧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위를 떠나 징계를 받는 당사자 입장에선 치명타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다르다. 선출직이라는 특수성이 있다고는 해도 국회가 자체적으로 만든 ‘윤리특별위원회’ 외에는 그 어떤 외부 기관의 관여도 받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각종 범죄에 연루되거나 파렴치한 행위가 드러나도 ‘솜방망이’ 징계가 다반사다. 윤리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 윤리특위, 사실상 ‘유명무실’ = 최근 국회에선 유독 불미스러운 사건이 많았다.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이 분양대행업체로부터 명품시계 등 3억여 원가량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게 대표적이다.
새정치연합 윤후덕 의원은 지역구에 자리한 LG디스플레이 대표에게 직접 전화해 변호사인 딸의 취업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 역시 법무공단 이사장에게 청탁해 변호사 아들의 채용을 도왔다는 의혹에 휘말린 바 있다.
뿐만 아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은 직접 운영하는 업체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쌀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경찰을 담당하는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유대운 의원은 술을 마신 채 경찰서 지구대로 가 ‘바바리 맨’을 찾으라고 사실상 수사를 지시하는 등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윤리위의 징계를 피해 갔고, 상당 수는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무소속 심학봉 의원의 경우 야당 여성 의원을 중심으로 ‘제명’ 요구가 거세 최근 윤리위에 회부됐지만, “본인에게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징계가 보류됐다. 그동안 국회에 올라왔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마다 그랬듯 결정적 순간에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빗나간 동료 의식이 작용해서다.
특히 19대 국회의원 가운데 범죄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현역 의원은 모두 18명이지만, 윤리위 징계를 받은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재도 25개의 징계안이 계류 중인데 단 한 건도 의결하지 못했다.
징계 대상 의원들 자체가 윤리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등 심각한 윤리의식 결여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국회에 징계 보완법 수년째 표류… 국회 불신 배경 = 국회법상 윤리위 징계는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제명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하지만 징계 구분이 단순하고 징계수위 결정도 자의적이다. ‘제명’과 같은 징계는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만 효력이 발휘된다. 그것도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다.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회 내에서도 윤리위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판사 출신으로 윤리위 징계심사소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은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 윤리 수준이 낮아졌다는 비판의 원인으로 윤리특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도 있다”며 자신이 2012년 발의했던 국회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개정안은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징계에 관한 의견을 보고하면 국회 윤리특위는 30일 이내에 이를 의결토록 강제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 자동 회부되도록 했다.
징계 종류는 세분화해 현재 출석정지 30일까지를 90일 출석정지로 확대하고 출석정지 기간에는 수당, 활동비 등을 지급하지 않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개정안은 새누리당 윤리특위강화TF팀장을 지낸 홍 의원이 여러 차례 토론회와 입법 공청회를 거쳐 50명의 의원의 참여를 끌어내 마련했지만, 3년째 표류 중이다. 의원들의 협조도, 관심도 없어서다.
홍 의원은 “그동안 유명무실, 동료의원 감싸기 등의 비난을 받아왔던 국회 윤리 심사와 관련한 제도를 전면적으로 보완해 신속하고 공정한 국회의원 징계 심사·의결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취지”라며 “국회의 자정기능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윤리위 구성원에 외부인사가 다수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국회의원만으로 구성된 현재의 윤리위 구성체계가 유지되는 한 아무리 좋은 징계시스템이 도입돼도 질적 징계 강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윤리특위 가동 등 사후 징계가 아니라 사전에 수준 있는 의원 후보를 걸러 내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