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입맛을 다시며 먹는 방송을 즐긴다. 그야말로 도문대작(屠門大嚼), 고깃집 문 앞에서 크게 씹는 흉내를 내는 격이다. 이 말은 원래 허장성세나 상상만으로 뭘 얻은 것처럼 만족하는 행동의 비유였다. 그런데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이 우리나라 8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를 소개한 책에 이 제목을 붙여 음식을 일컫는 뜻으로도 쓰이게 됐다. 광해군 3년(1611)에 귀양지인 전북 함열에서 엮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26권 중 제26권이다.
허균은 “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하게 되니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다. 이에 유(類)를 나누어 기록해 놓고 때때로 보아가며 한번 맛보는 것이나 못지않게 한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책에는 강릉의 방풍죽(防風粥) 등 총 117종 식품의 명칭, 모양, 맛 등이 기록돼 있다. 특히 실국수[絲麪]에 대해 중국의 오동(吳同)이 이를 잘 만들어 이름이 전해진다고 썼다. ‘우동’이라는 말이 일본이 아니라 중국에서 온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성소(惺所)는 허균의 호. 부부고(覆瓿藁)는 작은 항아리나 덮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글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글이나 책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다. 중국 한나라의 유흠(劉歆)이 양웅(楊雄)의 ‘법언(法言)’이라는 책을 후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항아리 뚜껑으로 쓸지도 모른다고 한 데서 유래됐다.
허균은 극형에 처해졌지만 외손자에게 책을 보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