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나와서 같이 마트에서 장보고, 밥도 먹고 하는데 아무래도 메르스 때문에 걱정돼서 애들은 두고 나왔어요. 필요한 것만 사가지고 집에 가려구요.”
14일 서울 강북구의 한 대형마트. 평소 같으면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할 곳이지만 마스크를 쓴 손님 몇 명만 눈에 띄었다. 주말을 맞아 마트를 찾은 김 모씨(여·38세)는 평소처럼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지 못하고 필요한 물건을 찾아 재빠르게 움직였다.
김 씨는 “원래 세제나 샴푸 같은 생활용품은 온라인에서 주로 샀는데 요즘에는 먹을 것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편”이라며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말쇼핑을 나온 직장인 박 모씨(여ㆍ32)는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막상 생필품을 구하다보면 가격이 많이 오른 느낌이 든다”며 “많이 사지도 않는데 10만원이 훌쩍 넘어 장바구니 물가는 많이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이어진 최악의 가뭄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생활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최근 6개월 연속 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들썩인지 오래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배추의 평균 도매가격이 1kg당 800원으로 1년 전 324원보다 146% 급등했다. 같은 기간 대파값은 1kg당 2480원으로 111% 올랐으며 양파 54%, 시금치 34%, 무는 32% 올랐다. 과일값도 대폭 올라 참외도 30% 비싸졌다.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밥상물가가 올라 가계가 더 쪼그라들고,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소득이 줄어든다.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생활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닥친 메르스 영향으로 유통가는 한산하기 그지 없다. 마트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상인은 “젊은 사람들은 좀 돌아다니는데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은 잘 안보인다”면서 “사람들이 좀 돌아다녀야 물건도 팔리고 할텐데”라며 걱정했다.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회복 조짐을 나타내던 내수심리를 급속도로 얼어붙게 만든 데는 단연 6월 들어 급속히 확산한 메르스가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소비 지표인 소매매출은 메르스 환자가 확인되기 전까지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메르스에 대한 우려가 증폭된 6월 첫 주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16.5%와 3.4% 감소했다. 영화관람객과 놀이공원 입장객은 55%와 60% 줄었다. 이런 현상은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 장기화로 유통업체뿐 아니라 관광·숙박 업종도 위태롭다. 내수 시장을 떠받치는 한 축인 외국인 관광객의 방한 취소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1일까지 방한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은 총 9만5376명에 달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8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메르스 여파로 음식·숙박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나 일용·임시직들은 소득이 줄어들고, 디플레이션 우려 속에서 체감물가는 뛰는 역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장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다고 해도 생활경제에는 늦게 반영되기 때문에 메르스 사태가 조금 더 길어지면 여름 휴가철 대목 경기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