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이 단순히 실물경제 성장 발전에 도움을 주는 서포팅 기능을 넘어 주체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견해이지만 정치권은 금융이 단순한 실물경제 보조기능에 머물렀던 1970~80년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으로 대통령 직속 위원회까지 구성해 추진했던 정부도 있었지만 갈수록 우리 금융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급기야 World Economic Forum에서 평가한 금융성숙도 면에서 우리는 아프리카 우간다 수준이라는, 언급하기조차 창피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서울IB포럼 참석자 중 한 분이 “20년 전 어느 모임에서 개최한 ‘한국 금융의 현황과 발전 방안’ 주제의 토론에서 제시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오늘 나온 결론과 똑같았다”고 지적했다. 실물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했지만 우리 금융은 무엇을 했을까.
우리 정치권은 서비스업의 본질을 외면하고 서비스업은 공짜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서비스 대가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데 이를 공짜로 생각하니 금융권이 이익을 좀 많이 내면 서비스 대가인 수수료를 인하하라고 압박을 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금융회사들은 국제경쟁력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 자체마저 위협받고 있다.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수익성 지표인 ROA, ROE 모두 경쟁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금융감독 체계부터 개혁해야 한다. 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이 한 부서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가 동일한 감독기관에 의해 실시되고 있다. 또한 산업정책에 있어서도 국제금융과 국내금융이 서로 다른 부처 소관이다 보니 위기 시 대응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한 부서에서 할 경우 감독이 산업 정책에 휘둘리게 되어 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저축은행 사태일 것이다.
금융부를 만들든지 금융위원회 정책 부문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해 한 부서에서 국내, 국제 금융산업정책을 동시에 집행하게 해야 한다. 대신 금융감독원을 독립시켜 감독정책과 감독집행을 하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동일 기구에서 하게 되면 소비자 보호가 희생될 소지가 많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금융의 형태 또한 겸업주의가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에 맞춰 감독도 기관별 감독행태를 벗어나 기능별 감독을 해야 한다.
전문성 면에서 감독기구의 직원 수준이 회사 전문가 수준보다 반드시 높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민간부분과 감독기구 사이 인적 교류가 활성화돼 급변하는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해 정책부서나 감독부서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금융은 자율과 창의를 먹고 사는 산업이다. 상품개발, 가격결정 등 구체적인 회사의 경영에 정부나 감독기구가 간섭하는 한 금융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금융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고 정부는 더 이상 금융상품 가격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금융회사 상품개발에 최대한 자율성을 높여 줘야 한다. 고객의 니즈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현 열거주의 방식의 금융 관련 법으로는 다양화되고 있는 고객 수요에 맞는 상품개발이 어려울 수 있다. 금융 관련 법을 포괄주의 방식으로 개편, 할 수 없는 업무만 법에 나열하고 금지되지 않는 것을 자유롭게 회사가 개발할 수 있어야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적기에 개발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금융이야말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산업이다. 정권만 바뀌면 금융회사 CEO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비전문가들이 점령군처럼 내려오는 상황에서 금융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의 지분이 전혀 없는데 무슨 권한으로 금융회사 인사에 관여하는가. 인사의 파행이 우리 금융 수준을 아프리카 콩고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제일 큰 원인일 것이다. 금융인의 적격성 심사제도를 도입해 자격 없는 사람은 아예 금융권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앞이 안 보이는 우리 금융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 금융회사 출현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