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저가를 외친 홈플러스에서 물건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더 운전을 해 가더라도, 돈을 더 주고서라도 다른 마트에 가자는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자신 몰래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내다 팔고, 협력업체를 쥐어짜 수익을 내는 회사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지난 목요일부터 최저가 경쟁 이슈에 몰두해 취재를 했던 제가 조금 창피해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홈플러스의 가격인하 배경은 이렇습니다.
홈플러스는 지난 10일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개인정보 판매 파문 이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올해 경영계획을 발표하겠다는 것이 기자간담회의 주요 이유였지만 경품 조작과 개인정보 판매 문제에 대해 회사가 공식적으로 기자들을 모아놓고 사과와 피해보상을 언급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도성환 사장은 500개 신선식품 가격을 연중 10~30% 인하하겠다면서 품질개선과 신선식품 전문관리직원 500여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협력업체를 쥐어짜 수익을 냈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1000억원의 순익 감소를 회사가 감당하겠다는 카드도 꺼냈습니다. 도 사장은 “가격 인하로 고객에게 실질적 혜택을 드리는 게 홈플러스의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개인정보 판매에 대한 사과와 보상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도 사장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이 사안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라 말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데이터는 이미 파기돼 소비자에게 유출 여부 통보도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홈플러스가 발표한 이번 가격 인하가 ‘물타기’를 시도했다는 세간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순간이었습니다. 개인정보 판매에 대한 비난 여론을 최저가 경쟁으로 희석시키고, 소비자들을 또 다시 기만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이미 수사결과 발표가 한 달이 넘었고 도 사장 등 임직원 6명과 법인은 기소된 상태입니다. 정보를 팔아 챙긴 돈도 230억원이나 됩니다. 과연 ‘가격인하’가 신뢰 회복을 위한 가장 적절한 방안이었을까요?
시민단체들이 거듭 강조한 대로 고객의 개인정보 매매는 불법적인 사항입니다.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 대책을 내놓아도 한참 모자랄 판에 가격 인하로 신뢰를 되찾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고객들이 ‘가격에만 몰두할 것이라는 생각’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이번 가격인하 경쟁이 자칫 납품업체의 피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1000억원의 순익 포기는 현재 경기상황을 감안하면 엄청난 모헙입니다. 수익성이 악화되면 이는 결국 납품업체에게 영향이 갈 것임은 누가 보더라도 자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