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2.14 他人能解(타인능해)
다른 사람도 열 수 있는 뒤주
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雲鳥樓)라는 누정이 있다. 낙안군수 류이주(柳爾胄·1726~1797)라는 분이 조선 영조 52년(1776)부터 6년에 걸쳐 지은 사대부 가옥이다. 집터는 풍수지리설에서 금환낙지(金環落地)라고 부르는 명당이라고 한다.택호 운조루는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또는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장 그럴듯한 것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설이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는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올 줄 아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에서 첫머리 두 글자를 취했다는 것이다.
운조루가 유명한 것은 ‘他人能解(타인능해)’라고 씌어 있는 뒤주 때문이다. 흉년이 닥쳐 식량이 없거나 배가 고픈 사람은 누구든 뒤주를 열고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특히 그런 사람들을 배려해 ‘남이 열 수 있는 뒤주’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었다. 사도세자의 경우는 뒤주가 목숨을 앗아간 도구가 됐지만 운조루의 뒤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 배려와 구휼의 세간이 됐다.
운조루는 굴뚝도 아주 낮다. 밥 짓는 연기가 눈에 잘 띄어 어려운 시절 이웃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한 것이라고 한다. 류이주의 집안은 이처럼 가진 자가 덕을 베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앞장서 실천했다.
운조루의 미덕은 또 있다. 류이주의 5세손 류제양(柳濟陽)은 1만여 편의 시를 썼고, 그의 손자 류형업(柳瀅業)에 이르기까지 8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생활일기와 농가일기를 썼다. 실천하지 않는 글공부를 하거나 글을 많이 읽기는 했는데 응용할 줄 모르는 사람을 글뒤주 또는 글보라고 한다. 북한어로 분류돼 있지만 되살려야 좋은 우리말이다. 그들은 결코 글뒤주가 아니었다. 이것도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