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의 기사회생을 두고 외계 괴물의 생환 운운한 대목에서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겠만 필자는 단언컨대 이 법안에 부정적이다. 바로 법안 곳곳에 스며 있는 독소 조항들 때문이다.
이 법안은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1년간 합쳐서 300만원을 초과한 돈을 수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수수금품의 5배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는다. 100만원 이하 금품 수수에 대해서는 금품가액 2배 이상 5배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직무 관련성이 없는 행위까지 처벌한다는 것은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가령 밥 한 끼 먹거나 작은 선물 받는 것도 안된다는 얘기다. 그것이 극히 선의에서 출발했다 해도 말이다. 그놈의 ‘직무 관련성 무관 처벌’ 조항 때문에 사적 자유가 침해받는 것이다.
처벌 기준 액수도 과하다. 100만원이란 기준은 웬만한 건 다 안 된다는 얘기다.
직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 책임이 사라지면서 검찰이 제멋대로 수사권을 남용할 우려도 있다. 안 좋은 의도로 정치인이나 관료에 대해 표적 수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하늘만큼 땅만큼 넓어진 것이다.
또한 이 법안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공직자의 부모와 부인, 아들, 딸 등 민법상 ‘가족’이 금품을 수수할 경우 해당 공직자를 처벌하게 돼 있다.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명백한 연좌제다. 연좌제는 우리나라가 과거 좌파 범죄자에 대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가 거센 반발이 일자 폐지한 제도다. 그리고 우리가 참말로 경멸해 마지않는 북한이 체제 존속을 위해 전 세계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유지하는 제도다. 그런데 우리가 이 연좌제를 받아들인다니 유엔 인권위원회에 북한과 나란히 제소나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아울러 법안이 언론사 종사자와 사립학교·유치원 종사자까지 모두 적용 대상에 범주에 포함한 것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이런 식이면 동네 슈퍼 아저씨도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법안은 기업의 합법적인 대외 활동을 제한할 소지도 있다. 기본적인 선물이나 식사 대접도 못 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 법안을 제안한 분들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실 공직비리에 관한 뉴스가 ‘탁’ ‘탁’ 터져 나올 때마다 울화통 터지는 건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법안이 통과돼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줄줄이 쇠고랑 차고 차가운 감방에 가는 것 보며 화끈한 희열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우리의 희열을 위해 헌법이나 인권 같은 거 짐짓 모른 체하고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처벌한다? 이건 안 된다. 우리 헌법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인권도 오롯이 지켜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헌법의 취지도 살리고 국민의 법 감정도 살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있다. 그것은 바로 법안에서 지극히 위헌적인 요소들을 빼고 처리하는 거다.
우선 직무 관련성 입증 없이 처벌 가능케 한 것과 관련해서 해당 내용을 보다 세세하게 규정하면 된다. 지나치게 엄격한 처벌 기준도 300만원 정도로 완화하면 될 것이다. 명백히 연좌제인 가족 처벌은 제외해야 한다. 또 이번 기회에 로비스트 합법화 법안을 만드는 것도 검토할 수 있겠다. 공식 로비스트가 만들어지고 기업이 이들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로비를 하면 불법적인 대외 활동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찌감치 이 제도를 도입해 올바른 기업 대외 활동 풍토를 만들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법안 처리 시점에 대해서도 당부할 게 있다. 여야는 법안을 2월에 처리한다는 심산인데, 이렇게 우려 가득한 법안을 후다닥 합의해 처리하면 나중에 항상 여기저기서 반론이 쏟아지게 된다. 좀 더 시간을 갖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쯤 처리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