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흥행적 요소가 충분하긴 하다. 친노와 비노와의 경쟁이 볼 만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흥행에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국민들 뇌리 속에 새정치연합이라는 정당이 각인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만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30%만 넘어도 이 정도의 흥행 참패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흥행 참패는 역설적으로 당권 주자들이 당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새정치연합의 당권 컷오프에서는 박주선, 조경태 두 의원이 탈락하고 이인영, 문재인, 박지원 후보가 통과했다.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가장 유리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당내 최대 계파의 보스인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박주선 의원의 컷오프 통과를 바랐을 수 있다. 박주선 의원이 컷오프를 통과했다면 본선에서 박지원 후보와 호남 표를 갈라 먹었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신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명성에서도 문재인 후보보다 앞서서 친노 지지표의 일부를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이인영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했으니,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선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문재인 후보가 내심 박주선 의원의 컷오프 통과를 바랐다고 가정할 때, 이것을 다른 친노들이 모를 리 없었을 테고 그래서 전략 투표도 가능했을 텐데도 박주선 의원이 탈락했다는 사실은 문재인 의원의 영향력이 그만큼 감소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쨌든 이제 문재인 후보는 박지원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게 됐다. 중요한 점은 이번 승부의 결과에 따라 야권 전체의 판도가 술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친노와 비노의 대결 국면이 더욱 격화될 것이고, 전당대회 이후 당내 분위기는 일촉즉발이 될 수도 있다.
결과에 따라선 크게 두 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문재인 후보가 예상대로 승리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비노들은 친노들이 대거 진출했던 19대 총선의 공천을 떠올려 자신들의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분당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고, 또 전당대회 직후라 할 수 있는 4월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두 석도 못 건지는 날엔 이런 분열 구도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경우엔 김한길 의원과 같은 중도 온건파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엔 박지원 후보가 승리하는 경우를 상정해 보자. 박 후보가 당권을 잡으면 당장은 당내 동요가 심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올 연말부터 시작되는 20대 총선의 공천에 있어 친노들은 수적 우세를 무기로 당 지도부를 흔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은 또다시 분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역시 이 경우도 4월 재보선에서 최소 두 석을 건지지 못할 경우, 당 지도부는 상당한 곤경에 빠질 위험이 높다. 물론 이런 경우 비노 세력이 결집해 친노를 견제할 때 가능한 것이다. 즉, 박지원 후보와 이인영 후보 간의 선거연대가 이뤄진다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 경우를 꿰뚫는 공통점은 다름 아닌 분열 가능성이다. 그래서 누가 당권을 거머쥐든 이런 분위기를 누르기 위해 개헌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단순한 개헌카드가 아니라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만일 이러한 방향으로 선거구제가 개편된다면 누가 당권을 쥐든지 당내의 반발을 한결 누그러뜨릴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아닌 중대선구제가 실시된다면 다수가 특정지역에서 동반 당선될 수 있어 공천과정이 한결 부드러워질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야당의 입장에서 올 정국은 분열이냐, 중대선거구제의 관철이냐로 요약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