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에서 오일쇼크는 1973~1974년과 1978~1980년 2차례에 걸쳐 나타났다. 1973년 배럴달 2.5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는 1년여 만에 11.6달러까지 치솟았다. 1978년말부터 시작된 2차 오일쇼크 역시 1년여 동안 유가를 12달러에서 34달러로 끌어올렸다. 세계경제는 요동쳤다. 1970년대 들어 매년 10% 안팎으로 성장하던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의 초입에서 맞은 1차 오일쇼크는 큰 탈 없이 넘겼지만 수출 100억 달러 고지를 밟은 뒤 터진 2차 오일쇼크의 충격은 피할 수 없었다. 1977년부터 4번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이던 유신정권이 힘없이 무너졌고 1980년 성장률은 마이너스 1.9%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위기국면을 넘어서며 80년대 10%를 넘나드는 고성장을 구가한 게 현재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3위 경제대국의 기틀이 됐다.
고유가는 세계경제에 늘 부담이 됐다.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온 우리 경제는 고유가의 악영향에 익숙했다. 특히 화석연료를 태우며 배출되는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변화가 빨라지고, 생태계 교란으로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국가 전체적으로 에너지 소비 절약을 미덕으로 삼고, 탄소배출권 거래제 같은 규제장치를 도입하고,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가능에너지에 관심을 쏟았다. 이는 탄소배출 억제, 기후변화, 재생가능에너지, 지속가능성 등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으로 들어온 과정이기도 하다.
국제유가 급락은 이 같은 흐름을 과거로 되돌릴 듯하다. 저유가 상황에선 에너지 소비를 애써 자제하지 않아도 된다. 전 세계 석유공급량 확대를 주도한 셰일가스는 생산원가가 현 국제시세보다 높은 배럴당 70달러 안팎임을 고려하면 조만간 변화가 불가피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고연비 차량에 대한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도 높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전기자동차나 연료전지차 개발 속도가 늦춰질 것이란 전망도 같은 이유에서 나온다. 지속적 연구개발 투자에 따른 기술발전으로 태양광 패널 가격이 떨어지며 태양광 발전 단가를 지속적으로 끌어내렸지만 저유가 국면에선 가격경쟁력을 갖추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관련 산업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지속가능한 지구, 푸른 지구를 추구하는 산업군이 저유가에 휘청거릴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인들은 1974년 1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연료효율’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덩치 크고 기름 많이 먹는 차를 최고로 치던 시절이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변화를 거부하는 빈틈을 채운 게 일본 자동차였다. 1980~90년대를 거치는 동안 저유가 국면마다 미국인들은 형편없는 연비의 대형차량에 마음을 빼앗겼다가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미국 내에서 지금 대형차 판매가 다시 늘고 있다. 고연비 차량 판매는 제자리걸음이다. 자동차 연비 기준(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CAFE) 강화가 안전장치 역할을 어느 정도 해 주겠지만 이에 저항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거세질 수 있다. 저유가에도 연비규제를 계속 감내하고 지지할지 의문이란 얘기다.
CSR 전문가들은 지금 저유가 국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지구는 화석연료를 더 태우는 방향으로 가게 될까, 탄소배출 억제를 통해 기후변화의 방향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전기차와 태양광발전이 새로운 시장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시들어 버리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