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경영학]‘노블레스 오블리주’…그들이 지킨 건 ‘富’가 아니었다

입력 2014-12-31 13:57 수정 2015-01-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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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발렌베리’·250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석유왕 ‘록펠러’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

재계가 세대교체의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 기업사는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기업을 맨손으로 일군 ‘호암’과 ‘아산’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여러 2세 경영인이 이들의 창업정신을 계승해 기업을 키웠다면, 3~4세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큰 과제를 안고 있다.

3~4세 경영인 중 최일선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부(富)의 세습’을 저울질하는 부분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다시 부정적인 이미지로 재창출돼 ‘승계=대물림’이라는 인위적인 방정식을 고착화한다.

가족 중심의 경영 승계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세계적인 명문가들이 혈연을 통해 부의 이탈을 막고 있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집안은 많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명문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투데이는 세계적인 명문가들이 어떻게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는지 그 비밀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세계적 명문가의 씨앗은 ‘부(富)’다. 명문가들은 이러한 경제력을 매개로 존경받는 기업을 일궈내 지금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다.

재력가는 늘 시기의 대상이 된다. 가진 자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은 사소한 일도 크게 부풀리는 마력을 지닌다.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감시가 끊이지 않고, 사회적 정서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여론의 뭇매를 맞기 일쑤다. 세상이 변해도 재력가들에 대한 시민의식은 오로지 부를 축적하는 무리라는 고정관념뿐이다.

세계 명문가들의 탄생 배경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명문가들은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경받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 명문가인 스웨덴 발렌베리, 유대계 로스차일드, 미국 록펠러 일가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이다.

◇존경받는 부자 발렌베리= 스웨덴의 경제를 얘기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가문이 158년 동안 5대에 걸쳐 전통을 이어 온 발렌베리다. 이 가문이 이끄는 발렌베리그룹은 스웨덴 GDP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외견상 독점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스웨덴 국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발렌베리 가문과 국민 기업 발렌베리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발렌베리그룹 창업주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는 금융업으로 명가를 일궜다. 해군장교 출신인 앙드레는 1856년 SEB의 전신인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을 세웠다. 앙드레는 스웨덴 최초로 채권을 발행하고, 해외 차입에도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 큰 재산을 모았다. 곧바로 인수합병(M&A)을 통해 발렌베리그룹의 기틀을 다졌다.

앙드레의 후계자인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도 아버지의 길을 따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프랑스계 은행에서 경험과 인맥을 쌓았다. 크누트는 스톡홀름엔스킬다를 유럽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은행으로 키웠다. 발렌베리그룹은 이후 크누트의 조카들을 거쳐 현재 5세대인 야콥 발렌베리, 마커스 발렌베리가 이어가고 있다.

발렌베리는 에릭슨, 사브, ABB 등 각 산업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18개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발렌베리는 기업 활동으로 창출한 부를 가문의 공익재단을 통해 스웨덴 사회에 돌려주고 있다. ‘존경받는 부자가 돼라’는 발렌베리 가문의 가훈과 전통은 벌써 1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철저하게 단결하라” 엄격한 가풍 로스차일드= 세계 최대 부호인 로스차일드 가문은 2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시조인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남긴 유훈을 철저하게 지켰다.

영국 왕실보다도 유럽에서 더 큰 영향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1744년 마이어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면서 비롯됐다. 11세의 나이로 가장이 된 마이어는 동생들과 골동품 사업을 통해 적지 않은 재물을 모았다. 금융업으로 가업을 일으키겠다는 마이어는 사업 초창기 ‘철저하게 단결해 절대로 형제 사이의 다툼이 없게 한다’는 가문의 절대적 원칙을 세웠다. 이는 마이어의 5명의 아들이 합심해 로스차일드가의 부흥기를 이끈 원동력이 됐고, 현재까지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가문의 후대들이 사업적으로 부딪히거나 반목하는 등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효과를 낳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정치경제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칼 마르크스를 지원해 공산주의 창설에 관여했고, 이스라엘 건국에 기여한 일화는 유명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을 소유한 로스차일드는 금융업을 기본으로 에너지자원, 레저서비스업, 백화점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8대가 이어지는 동안 로스차일드 가문의 직계 자손은 200여명을 훌쩍 넘겼다. 전 세계 각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로스차일드 후손들은 ‘다섯 개 화살’로 그려진 가문의 문장을 기업의 공통 로고로 사용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다.

◇석유왕 록펠러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록펠러 가문을 명문가로 일으킨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석유왕’으로 유명하다. 그가 1870년 설립한 오하이오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의 경제부흥과 함께 록펠러 가문에 부와 명성을 안겼다.

록펠러는 공익을 위한 자선사업으로 더욱 유명하다. 6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록펠러1세의 유언은 ‘나눔’으로 귀결된다. 30대에 미국 최대 부호 반열에 오른 록펠러1세는 55세에 암으로 인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어느 날 병원 로비에 걸린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란 문구를 보며 감성에 젖어 있던 록펠러는 딸아이 입원비가 없어 쩔쩔매는 어머니의 사정을 듣고, 비서를 통해 몰래 지불했다. 얼마 후 그가 도운 소녀는 회복했고, 인생 최대의 행복을 맛본 록펠러는 이때부터 나눔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그의 암도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록펠러1세는 기부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미국 시카고대학 설립을 위해 1890년 당시 4억1000만 달러를 기부했고, 공익재단인 록펠러재단과 록펠러의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록펠러 가문의 특징은 철저한 절약정신이다. 록펠러1세는 절약의 미덕을 언제나 강조했다. 그는 외아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용돈기입장을 쓰도록 가르쳤다. 록펠러2세 역시 아버지 못지않았다. 그는 자식들에게 “낭비는 죄악”이라고 늘 가르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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