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으라.”법전스님이 평소 동안거 정진을 앞둔 수행자들에게 당부입니다. 요즘 우리에게 가장 마음에 와닿는 큰 가르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인총림 방장 도림 법전(法傳) 스님이 23일 오전 11시 25분께 입적했습니다. 세수 90세, 법랍 73세.
본명이 김향봉인 법전스님은 1925년 전남 함평 3남1녀 중 셋째 아들로 출생한 스님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14세 때 전남 장성 백양사 청류암으로 출가했습니다.‘속가에 두면 단명할 팔자’라는 말을 들은 부모님 결정으로 속세를 떠나게 됐습니다.
17세 때 광 불갑사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24세 때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결사에 참여하며 성철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참선을 시작한 법전스님은 한번 좌복에 앉으면 절구통처럼 요지부동한 채 수행정진한다 하여 ‘절구통 수좌’로 불렸습니다.
봉암사에서 청담·향곡·자운 스님 등과 함께 불교에 스민 일본색을 걷어내며 생식(生食)하고 장좌불와(長坐不臥·누워 자지 않음)하던 성철 스님에게서 참 선승의 면모를 발견해 평생 스승이자 형님으로 모셨습니다.
생전의 성철 스님도 “웬만한 것은 법전 스님에게 물어라”고 할 정도로 그를 믿었고, 자신을 찾아 출가한 행자를 법전 스님의 상좌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51년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스님으로부터 도림이라는 법호를 받았습니다. 69년 퇴락한 김천 수도암으로 거처를 옮겨 가람중수와 선원 복원을 통해 많은 납자들의 수행을 도왔고, 2006년엔 팔공산에 도림사를 창건해 대가람으로 일구었습니다.
법전 스님은 69년 성철 스님을 방장으로 모시고 선원 유나 소임을 맡았고, 84년 해인총림 수좌 등을 거쳐 96년부터 지금껏 방장으로서 해인사의 수행 전통을 이끌어왔습니다.
법전 스님은 성철스님의 뒤를 이어 11대와 12대 조계종 종정과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해인총림 방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법전 스님은 동안거 정진을 앞둔 수행자들에게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으라”는 태암보장 선사의 당부를 전했다.
해인사 퇴설당 책상 서랍 속에는 법전 스님의 임종게가 남겨져 있습니다.
‘산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山色水聲演實相)/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구나(曼求東西西來意)/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若人問我西來意)/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우고 있구나(巖前石女抱兒眠). 게송에 담긴 서래의(西來意)는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 일컫는 말로 절집에서는 화두로 쓰입니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27일 오전 11시 합천 해인사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