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우리네 농촌에서는 이맘때가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 모든 농작물 수확이 끝나버린 겨울 문턱에 이르러 풍족한 땔감만 마련되면 아무리 매서운 추위가 닥쳐도 겁날 것이 없었다. 수확한 벼의 열매 껍질을 벗긴 알맹이가 쌀이다. 쌀은 밀,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식량자원다. 쌀은 밀이나 옥수수와 같이 가루를 내어 조리하지 않아도 되고 탄수화물과 열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양질의 곡물이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인구 부양력이 가장 높은 작물로 재배되고 있다. 우리 민족에 있어 쌀은 가장 중요한 식량이자 에너지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쌀은 곡식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한민족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영물로 인식돼 왔다.
일산 신도시 개발지역에서 1991년 발굴된 신석기시대 토탄층에서 22립의 탄화미가 출토됐다. 이 사실을 통해 일찍부터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선조들이 선사시대부터 활발히 벼농사를 지어왔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열대성 식물로 알려진 벼는 오래전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농경문화의 주인공으로 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농작물이다. 조선시대 왕들도 오곡 중의 으뜸인 벼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몸소 선농단에서 제례를 지냈다. 쌀이 귀했던 시절에도 집안에 귀한 손님이 오거나 경사가 있을 때면 아껴둔 쌀을 꺼내 맛있는 쌀밥을 지어 내곤 했다. 또한 명절날 차례상에는 반드시 쌀밥을 지어 조상님께 올렸다.
수확량이 많지 않았던 재래종 벼를 재배하던 시절에는 해마다 5~6월이 되면 춘궁기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쌀 수탈로 굶주린 농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이주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녹색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벼 다수확 품종 육종사업이 활발히 진행됐다. 결국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통일’ 벼 품종을 육성해 힘겨웠던 보릿고개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최근 먹거리가 다양화하고 식습관이 변화되면서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지금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쌀시장 개방의 압박을 크게 받고 있는 현실이다. 오늘날과 같이 국가 간 자유무역 경쟁이 치열해진 국제사회 속에서 일방적 농산물 시장의 보호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쌀시장 개방을 미룬다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무역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미 2015년으로 예고된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농민들과 장기적 안목에서 우리의 식량주권 사수를 위해 쌀농사 자체의 대변신이 필요할 것이다.
쌀이 양질의 탄수화물을 지닌 곡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식량으로서 쌀의 가치보다는 건강을 위한 기능성과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기호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일반 쌀과 비교해 각종 비타민이나 미네랄 함량이 높아 건강 증진에 효과가 있다는 흑토미, 적토미, 녹토미 등이 비싼 값에도 인기가 높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또한 벼를 재배하는 논의 환경보전 기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벼농사는 아직까지 우리 농업의 주를 이루며 논은 전체 농경지 면적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논이 지니는 환경개선과 재배방지와 같은 생태계 보전 기능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끝으로 쌀은 장기적으로 우리 국민의 식량안보와 직결된다. 어떤 방법으로든 전통적 쌀농사 기술과 작부체계, 품종 등은 별도의 보전 방안을 통해 영구히 보전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