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논의가 소득대체율 논쟁으로 비화하게 된 배경에는 소득 보장파의 비약적 성장이 있다.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연금행동)으로 대표되는 소득 보장파는 연금개혁 논의를 대결구도로 만든 ‘주역’으로 꼽힌다.
연금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 연금학계에선 소득 보장파가 다수였다. 하지만 1차 재정추계(2003년)를 계기로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불거지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성숙, 기초노령연금 도입 등으로 노후소득 보장이 강화하면서 많은 전문가가 소득 보장파에서 이탈했다. 소수가 된 소득 보장파를 끝까지 지킨 전문가 중 한 명이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서 야당 몫 공동위원장으로 추천됐던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김 교수는 2012년 현재 연금행동의 전신인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연금행동은 연금개혁 논의에서 영향력이 미미했으나, 2015년 참여연대와 양대 노동조합총연맹(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00여 개 노동·시민단체의 연합체로 재편되면서 세를 불렸다. 이때부터 연금행동의 정체성도 명확해졌다. 김 교수는 애초 기초연금 차등, 퇴직급여를 활용한 소득대체율 보전 등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연금행동은 ‘소득대체율 50%’를 단일 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양대 노총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본지에 다른 설명 없이 “스토리가 좀 복잡하다”고만 했다.
김 교수가 대통령 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2018년 말부터는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제갈현숙 한신대 강사 등이 연금행동을 대표해 활동하고 있다. 사회활동을 하는 교수들, 일종의 소셜 페서(socialfessor)다. 특히 연금행동을 구성하는 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 중 하나다. 이는 민주당이 집권당인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연금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연금개혁 논의에서 연금행동의 영향력이 확대된 데 대해선 부정적 시각이 많다. 대표적인 게 여론 왜곡이다. 객관적 근거에 기초하지 않은 이익단체의 주장이 전문가의 입을 통해 전달되면 해당 주장이 전문가적 식견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세대의 미래 국민연금이 소득대체율 40%에선 66만 원이지만 50%에선 100만 원이 된다는 주장(남찬섭 교수), 기초연금이 소득대체율 하향(60%→40%) 때문에 도입됐다는 주장(주은선 교수)이 대표적이다. 같은 산식에서 소득대체율 20% 상향으로 급여를 50% 이상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미성숙에 따른 짧은 가입기간과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무엇보다 연금행동의 주장을 중심으로 연금개혁 논의가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으로 양분되면 진영 간 대결구도가 돼 논의의 다양성이 사라진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대학 교수는 “학계에서 소득 보장파는 소수”라며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그들을 중심으로 전문가 집단이 양분되면 생산적인 논의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