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2일부터 시작된 하반기(9월) 전공의 모집이 31일 마감을 앞둔 가운데, 대다수 수련병원의 전공의 지원자 수가 0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 갈등 장기화가 한국 의료를 총체적 난국으로 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주요 수련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시작됐지만 다수의 병원에서 지원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서울 지역 소위 빅5 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중에서도 지원자가 ‘0명’을 기록한 곳이 있을 정도여서, 지원자 수는 극소소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하반기 충원 예정인 전공의 인원은 총 7707명이었다. 앞서 정부가 수련병원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한 사직 처리를 요청한 결과, 전공의를 채용한 151개 병원 중 110개 병원에서 사직 처리 결과를 제출했고 전체 전공의 1만4531명의 56.5%인 7648명이 사직 및 임용 포기로 처리됐다.
서울 지역 빅5에 속한 A병원 관계자는 “보통 전공의 지원 마지막 날 지원자가 몰리긴 했었지만 아직 0명이다. 31일 오후 5시까지가 모집 기간인데 지원자는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의 B대학병원 관계자는 “문의조차 들어오고 있지 않다. 사직한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을 통해 복귀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일부 사직 전공의들은 이미 개원가로 눈길을 돌렸다는 소식도 접했다”고 전했다.
의대 교수들은 지속해서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충남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달 19일부터 25일까지 전국 의과대학교수 3039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무대응 전공의 일괄 사직 및 대규모 하반기 모집’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후반기 모집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2711명(89.2%)으로 압도적인 반대의사를 표했다.
‘수련병원 상관없이 하반기 전공의를 뽑지 않겠다’라는 응답에는 1525명(50.2%)이 동의했고, ‘자기 병원 사직한 전공의는 뽑겠다’는 응답에는 1336명(40.0%)이 동의했다. 자기 병원을 사직한 전공의가 9월에 다시 응모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제로 의대 교수 대다수가 하반기 전공의 선발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괄 사직과 대규모 하반기 모집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2920명(96.1%)이 ‘정부’라고 답해, 대다수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강압적인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고 인식이 강했다. 또 하반기 모집을 통해 사직 전공의들이 소속 병원으로 복귀할 가능성에 대해선 1850명(60.5%)이 ‘필수과, 비필수과 가릴 것 없이 하반기 복귀가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울산대·가톨릭대·고려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6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 추진 이후 한국 의료계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며 “전공의들의 복귀는 아직도 요원하고, 수업 현장을 떠난 의대생의 복귀는 더더욱 사망 없어 보인다. 본과 4학년 중 국시 미응시자는 최소 95.5%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지금이 공멸 또는 극적 타개의 기로”라면서 “이대로 대학병원의 수련시스템이 무너지면 가뜩이나 입지가 줄어드는 필수과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고 아예 전공의 수련 명맥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승적 결단을 통해 대화합의 타개책을 마련해달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의대 정원 증원 관련 국정조사에 나서 달라는 국민동의청원도 진행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24일 작성한 해당 청원은 28일 기준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위원회로 회부됐다.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면 국회 본회의로 상정된다.
앞서 증원과 관련해 교육부 청문회를 열어달라는 청원도 11일부터 24일까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소관위원회인 교육위원회에 회부돼 심사 중에 있다.
전의교협 측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은 협의도, 근거도, 준비도 없는 ‘3무(無) 졸속정책’임이 드러났다”면서 “대학병원 붕괴와 의사·전문의 양성 공백, 의학교육 부실화로 의료현장과 교육현장이 파탄으로 가는 상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국정조사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