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전공의 사직 현실화…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가능할까

입력 2024-07-17 14:29 수정 2024-07-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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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정부 유화책에도 전공의 ‘무응답’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의대 정원 확대해 반대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대다수 전공의들의 사직이 현실화됐다.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면 전공의 복귀가 없어도 의료공백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7일 본지 취재 결과 각 수련병원은 정부 요청에 따라 이날까지 미복귀 전공의 사직 처리를 마치고 결원을 확정해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날 기준 복지부에 따르면 수련병원 211곳에 출근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전체 1만3756명 중 1157명(8.4%)에 불과하다. 전공의 출근율이 그간 7%대 후반과 8% 초반을 유지했던 것을 고려하면 전공의 복귀 움직임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전공의들은 복귀도 하지 않고 사직도 하지 않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하고,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응할 경우 ‘수련 도중 사직시 일년 내 동일 연차·과목 복귀 불가’ 규정에서 제외하는 특례까지 적용하겠다며 유화책을 제시했지만 당사자인 전공의들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요 수련병원들은 무응답 전공의들에 대해 이날 일괄 사직 처리한 뒤 하반기 전공의 모집 규모 등을 복지부에 통보할 예정이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복귀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9월에 지원하는 전공의 수도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수련병원은 그간 전공의들의 사직서 처리 여부와 사직 처리 시점 등을 두고 고민을 이어왔다. 그간 전공의 비중이 적게는 30%, 많게는 50%에 달했던 만큼 전공의들 사직이 병원 운영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일부 수련병원은 ‘전공의 없는 병원’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진료지원(PA) 간호사를 최대한 활용하고 병상 축소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사직 처리 시점에 대해서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한 2월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도 미복귀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2월 29일 자로 일괄 수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사직 효력은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이 철회된 6월 4일 이후 발생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직 시점에 입장 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미복귀 전공의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료계에선 사직 시점이 6월이 되면 업무개시명령 불응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으로 법적 책임은 물론 퇴직금 등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 및 전국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소속 수련병원 교수 대표모임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전공의 사직서 처리 및 수리 시점 등은 일방적으로 결정될 것이 아니라 개별 소속 전공의들과 충분한 논의 후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련병원 교수들은 복지부 안내문의 전공의 사직 처리 관련 공문은 행정절차법 제2조 제3호에 규정된 ‘행정 지도’에 불과한 것으로 부당하게 강요될 수도 없고, 따르지 아니했다고 불이익 조치를 할 수도 없다고 이유를 제시했다.

따라서 이들은 “앞으로도 수련병원장들은 필수 의료, 미래 의료의 주인공인 소속 전공의들을 보호하는 막중한 책임을 다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전공의 복귀가 소수에 그치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구조 전환’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전공의 복귀 규모가 크지 않을 경우 ‘전문의 중심’ 병원 구조 전환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실현 가능성도 적고 의료 붕괴만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수련병원 교수 대표모임은 ‘전문의 중심 병원’ 구상은 비현실적 환상이고 임시방편 땜질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전문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양질의 전공의 수련 시스템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복지부는 지금이라도 임기응변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면서 대책의 출발점은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지금도 전문의가 없는데 어떻게 전문의 중심 병원이 가능하겠는가. 전문의 중심 병원은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다”라며 “전문의 수를 늘리고, 전공의를 줄이거나 전공의 수는 유지하면서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개혁을 먼저 진행했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인데, 너무나도 많은 소를 잃고 있다. 해결할 수 있는 기본 전제 조건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문제로 의료 현장을 떠났다”면서 “진정 전공의들의 복귀를 원한다면 의대 정원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전공의를 복귀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국민적 지지를 받고 정책적 합리성을 토대로 의대 정원 확대를 진행했더라도 부작용도 고려했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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