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선박회사에 공문 보낸 게 전부…법원 판단 받을 것”
뇌병변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서모 씨는 지난해 10월 제주도 가파도행 여객선 탑승을 거부당했다. 승선권을 구매했지만, 전동휠체어를 그대로 배에 실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뇌병변 장애인은 수동휠체어를 탈 수 없다. 도로교통법은 전동휠체어를 ‘차마(車馬)’가 아닌 ‘보행자’로 규정한다.
발달장애로 수동휠체어를 타는 이모 씨는 사전에 선박 업체에 전화하는 등 노력 끝에 마라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안전장치는 전무했다. 심지어 부장교(어선 탑승을 위해 연결한 다리)도 없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이 씨가 버티는 방법은 두 팔로 휠체어를 붙잡는 것뿐이었다.
비장애인에게 선박 탑승은 일상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두 사람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제주도 내 선박 탑승 거부에 관한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 씨는 “제주도에 살기 때문에 관광 오는 분들, 특히 장애를 가진 분들이 불편함 겪는 것을 매번 목격했다”며 “제주에 산 지 7년째인데, 여전히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없다. 장애인 차별뿐 아니라 비장애인의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이어 “항만회사와 제주도 등 10여 곳의 관계 부처에 여러번 문제를 제기했지만, 편의시설 개선을 추진한다면서도 정작 달라지는 건 없었다”며 “이번에는 묵과할 수 없겠다 싶어서 법원에 호소하고 판결을 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피고는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 해당 선박 사업주다. 정부와 선박 사업주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함께 제기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송욱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통해 원고들의 여객사업자 승선을 거부한 행위, 이동편의 시설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가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규정한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법에는 ‘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장애인들은 최근 몇 년간 버스 탑승, 편의점 접근 등 차별을 호소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주로 장애인의 손을 들어줬고, 이동권이 점차 개선돼 왔다. 하지만 여객선의 경우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설치율은 여전히 저조한 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 있는 여객선은 총 164척이다. 이 중 자동안내시설, 휠체어 승강설비, 휠체어보관함 및 교통약자용 좌석·장애인 전용화장실 등 이동편의시설 기준 적합 설치율은 37.8%에 불과하다. 철도(98.9%), 도시·광역철도(96%), 버스(90%)와 비교하면 현저한 차이다.
김강원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부센터장은 “2016년 인권위가 해수부와 국토부에 여객선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라고 권고했고, 정부는 권고를 수용했다”며 “이후 정부가 시행한 건 선박회사에 공문을 보낸 게 전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시의 이동권도 중요하지만, 고령자 등이 많은 도서지역은 더 중요하다”며 “누군가에겐 불편함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완전한 사회적 배제일 수도 있다. 인권은 누구도 소외가 없어야 한다. 법에 따른 재판부의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