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를 통해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다보니 단순 호기심 차원에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기업 법률자문을 주로 수행하는 법무법인 입장에서 보면 근래 기업들로부터 구조조정과 관련한 자문 의뢰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근로자 해고가 쉽지 않은 한국 노동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계 회사 또는 해외에서 장기간 유학한 최고경영자(CEO)들과 소통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심지어 이미 부당 해고를 해놓고 사법 리스크는 알아서 잘 방어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회사도 있단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같은 자문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두 달여 전쯤 만난 도산‧파산법 전문 변호사는 올 들어 개인 회생‧파산과 법인 회생‧파산 사건들이 다시 급증하리라 예상했다. 당시 그는 “코로나19 피해구제 대책으로 대출만기 연장, 이자납부 유예, 원리금 및 세액 감면 등으로 연명하던 한계기업들이 본격적인 엔데믹 시대를 맞아 한시적으로 시행된 정책들이 원위치 되면서 호흡기를 떼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21일 대법원이 공개한 도산사건 통계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올해 1분기 법인회생 47.3%, 법인파산 50.9%, 개인회생 사건이 47.7% 증가했다. 2023년 1분기 전국 법원의 도산사건 접수건수는 5만727건으로 1년 전인 2022년 1분기(4만390건)보다 1만 건 넘는 25.6% 늘어났다. 법원행정처는 △법인회생 △법인파산 △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등 도산절차 전(全) 유형에 걸쳐 모두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1분기에 전국 법원 중 도산사건 접수건수 증가율 상위 3개 법원은 부산회생법원(38.1%), 대구지방법원(31.2%), 수원회생법원(30.9%) 순이었다.
부산회생법원 도산사건 접수건수는 3362건으로, 이 가운데 개인회생 사건은 전년 동기보다 63.7% 급증해 전국 법원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추이가 별로 좋지 않은데, 2월에 이어 3월에도 도산사건 접수건수가 더 늘어난 데다 매달 증가율이 상승하는 추세다. 3월 한 달에만 부산회생법원의 개인회생 접수건수가 작년 같은 달과 비교할 때 94.8% 폭증했다.
법원행정처는 “부산 지역 도산사건 증가뿐 아니라 부산고등법원 관내에 있는 울산과 경남 지역의 일부 사건도 중복관할 인정으로 도산전문법원인 부산회생법원에 제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울‧경 ‘PK’ 지역은 물론 대구지법 관할인 대구‧경북 ‘TK’ 지방까지 영남권 ‘서민경제’가 좋지 않다는 신호다.
수도권 역시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대기업 본사 소재지가 밀집한 수도권에선 법인 회생‧파산 사건마저 크게 늘고 있어 여건은 지방보다 더 안 좋다고 할 수 있다.
올해 1분기 수원회생법원 도산사건 접수건수는 7279건에 달한다. 이 중 개인회생 사건이 4626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3039건)보다 52.2% 늘었다. 법인파산은 61건으로 1년 전(39건)과 견주면 56.4% 급증했다.
최근 시세조종 행위가 어려워지자 주가조작 세력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회생법원에서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회사들로 눈길을 돌리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법원은 회생 절차를 종결할 때 새 인수자를 찾아준다. 회생절차 졸업 기업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세력들이 법원 감시를 벗어나자마자 법인 소유 공장 부지나 건물‧물건 등을 되팔아 ‘먹튀’ 수법을 쓴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늘어나는 도산사건에 대구‧광주‧대전 지역에도 도산전문법원인 회생법원의 확대 설치를 검토 중이다. 사람도 힘들고 기업도 힘든 시기다. 쇼핑 선수들의 놀이터만 커지지 않도록 이 부분까지 대안을 고민한 도산사법 서비스 개선을 바란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