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굳건한 요새와 같았던 산업들이 하나 둘 없어지는 시대가 됐다. 저자는 “우리는 기기, 제품, 회사, 직업 그리고 상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며 영원히 사라지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서술한다. 한마디로 ‘디지털 퍼스트 사회’다. 행하고, 말하고, 보고, 듣고, 소유하는 것 가운데 오로지 디지털 공간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오프라인 공간에 존재했던 물리적 실체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여러분의 비즈니스 가운데 증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증발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런 변화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물 세계에서 디지털 세계로 우리가 점점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멈춰 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저항하고 분노할지라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증발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제조, 유통, 소매, 마케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증발이란 거대한 흐름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렬한 저항과 분노를 증발의 시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위기뿐인가. 그렇지 않다. 구식 실물경제에서는 조금의 지분도 갖지 못한 신흥 벤처 스타트업들에는 거대한 금광지대가 발견된 것과 같다. 거대한 골드러시가 시작된 셈이다.
우버는 단순히 새로운 사업 모델 하나를 만든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버는 자동차 소유라는 물리적인 것을 서비스라는 만질 수 없는 것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왜, 손을 들고서 택시를 잡기 위해 서 있어야 하느냐’라고 저자는 묻는다. 에어비앤비는 아무런 물리적인 것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 숙박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이런 현상들은 증발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증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리적 상품을 대신하는 정보다. 만질 수 있는 제품 대신 정보를 제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면 당신은 시대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불가피한 변화에 대해 독자들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증발은 멈출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교육, 노동, 기업이 바뀔 것이고, 정부 기관과 심지어 우리의 생물학적 육체까지도 그 변화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사회 전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분명한 방향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한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것을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그리고 약간의 방법을 스스로 실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점이다. 완고함을 버리고 유연함을 선택하지 않는 사회나 개인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증발의 시대가 주는 메시지다. 이런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걱정스럽다.
많은 사람이 ‘증발의 시대’라는 시각으로 자신과 조직과 나라의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기를 바란다. 날로 딱딱해지는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강력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공병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