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품질 감독관 사라지자 ‘제조업 신화’도 사라졌다

입력 2018-02-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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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품질 감독관 거품 경제 이후 점점 축소

▲고베제강의 우메하라 나오토 부사장이 작년 11월 기자회견을 열고 품질 자료 조작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도쿄/로이터연합뉴스
▲고베제강의 우메하라 나오토 부사장이 작년 11월 기자회견을 열고 품질 자료 조작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도쿄/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제조업 성공 신화가 품질 결함 문제로 무너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겐바(현장 품질 감독관)’를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외주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제조업체는 미국 제조업체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큼 기록적인 신화를 썼다. 1950~1990년 사이 일본의 수출 규모가 130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일본 자동차 기업 도요타가 도입한 ‘적시공급(JIT·Just in Time)’은 큰 이목을 끌었고, 포드를 포함한 미국 제조업체들은 일본 기업의 재고 관리와 비용 절감 방법을 공부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새 일본 기업들이 줄줄이 품질 면에서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과거의 영광을 훼손하고 있다. 세계 4개 자동차 업체인 닛산은 작년 9월 무자격 검사원이 부적절한 검사를 시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소 20년 전부터 무자격자가 신차 품질 검사를 한 것으로 나타나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작년 10월에는 스바루가 공장 품질 검사에서 무자격 직원이 검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일본 대형 철강사 고베제강도 제품 품질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메이드 인 재팬’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생산 현장에서 품질 감독을 하는 전문가들이 사라진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도쿄의 한 변호사인 구보리 히데키는 “겐바(현장 품질 감독관)가 사라지고 있다”며 “현장에 무지한 경영진들은 책임을 지지 못하면서 일본 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30년간 고베제강에서 근무한 한 직원은 1990년대 거품 경제가 폭발한 뒤 겐바에 대한 압력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품질 검사 직원은 생산직 노동자만큼 일이 많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리해고 첫 번째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또 “품질 검사 직원을 해고한 뒤 라인 근로자가 자체적으로 품질 검사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일부 품질 검사 인력은 외주로 빠졌다”고 폭로했다. 고베제강에서 최종 품질 검사를 했던 24세의 우에다 다카시는 “우리는 품질보다 빠른 선적을 우선시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고 토로했다.

고베제강 외에도 품질 검사 직원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추세는 일본 제조업계 전반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파나소닉은 자사의 품질 검사 직원 중 정규직은 3분의 1 이하라고 설명했다.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경영진들이 스캔들을 더 키웠다. 고베제강은 작년 11월 자체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폐쇄적인 문화가 스캔들에 불씨를 더했다 점을 인정했다. 앞서 10월 가와사키 히로야 최고경영자(CEO)는 “이 문제가 얼마나 광범위한 문제인지는 대중들의 상상 이상”이라고 말했다.

아사히글라스의 시마무라 타쿠야 CEO는 “지난 10년간 매년 우리 회사는 제품 결함을 감추라는 상사의 지시를 따를 것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랄만한 숫자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정규직 품질 검사 직원을 줄인 데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WSJ “일본 경영진들이 품질 문제가 터졌을 때 미숙하게 이를 처리한 것도 일찍부터 조짐이 있었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198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를 통해 일본의 경영진이 은행과 정부 관료와 관계 맺기에 집중하면서 회사 경영에는 소홀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와세다대학교의 아츠시 오사나이 경영학 교수도 “오늘날 겐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속에서도 일본의 많은 제조업체 경영진들은 공식적인 경영 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스캔들이 표면 위로 올라오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라고 밝혔다. 오사나이 교수는 “일본의 품질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은 것일 수도 있다”며 “이를 계기로 일본의 제조업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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