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Brexit) 이후에도 해결해야 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중에서도 EU 탈퇴로 효력을 잃게 되는 각종 국제협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는 168개 비 EU 국가와 막대한 규모의 협정을 맺었다며 영국이 EU를 최종적으로 떠나게 될 2019년에 영국이 재협상해야 할 협정이 최소 759개에 이른다고 3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오는 6월 8일 총선 이후 참으로 무시무시하면서도 어려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FT는 강조했다. 브렉시트는 영국과 EU 사이의 일로만 간주돼왔다. 그러나 실제로 브렉시트 협상과 더불어 영국은 전 세계 다른 국가와 750개가 넘는 협정을 놓고 미니 협상도 벌여야 할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여기에는 지름길도 없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의 법률 고문이었던 앤드루 후드는 “이는 마치 한 국가가 중단됐다가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는 매우 어렵고 반복적인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영국이 EU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할 기회가 왔으며 최악의 상황에도 협정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당사자가 ‘EU’에서 ‘영국’으로 바뀌는 것으로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관료들 사이에서 한바탕 혼란이 벌어지고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모든 협정을 다시 살펴보고 정책 결정자 간 회의 일정을 잡으며 출장도 가야하는 등 브렉시트 지지자들처럼 단순하게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많은 국가가 결정을 내리기 전 EU와 영국의 논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확인하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영국 입장에서 시간이 더욱 촉박해질 수밖에 없다.
재협상에 나서야 할 협정은 그 분야도 다양하다. FT의 분석에 따르면 자유무역협정(FTA)과 다자간 협정 등 무역 부문에서만 295개 협정이 있다. 반독점과 정보 공유 등 규제 협력이 202개로 그 뒤를 잇는다. 어업협정은 69개, 운송협정은 65개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관세(49개)와 원자력(45개), 농업(34개)도 재협상 대상이다.
이들 759개 협정 중 칠레 해역에서의 황새치 보존이나 ‘국제고무연구그룹’의 절차 규정과 같은 협정들은 영국 입장에서는 덜 중요하다.
그러나 일부 협정은 매우 중요해서 이것이 없는 경우를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라고 FT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운송 부문에서 항공서비스협정이 있기 때문에 영국 비행기들이 미국과 캐나다, 이스라엘 등에 착륙할 수 있다. 원자력 협정은 영국 원전을 돌리는데 필요한 부품과 연료 거래를 허용케 한다. 두 부문 모두 무역협상과는 별도로 해결돼야 한다고 FT는 덧붙였다.
가장 두드러지면서도 경제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역협정이다. 리암 폭스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기존 조건을 유지하는 ‘제로 붕괴’를 약속했다. 그는 “영국은 기존 자유무역협정을 재활성화할 것”이라며 “우리가 ‘고립된 섬’이라는 이미지를 그리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들도 영국에 대한 시장 접근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국가는 더 나아가 새로운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 폭스 장관은 기존 협정에서 더욱 자유화 범위를 넓히려는 12개국 이상과 예비 협상을 시작했으며 여기에 한국과 스위스, 노르웨이가 포함된다고 FT는 설명했다.
그러나 무역협정 재협상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오다 헬렌 슬레네스 EU 주재 노르웨이 대사는 “우리는 어업 분야에서 최상의 조건을 원한다. 그러나 관세와 쿼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브렉시트 조건도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사실상 EU와 노르웨이, 영국의 복잡한 3자간 토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무역기구(WTO)도 무역협정 재협상에 얽혀있다. 예를 들어 영국이 특정 국가와 만족스러운 협정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다른 WTO 회원국이 이런 개정에 딴지를 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