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다. 직지 연구자들은 이것이 '직지'의 유럽 전파를 입증해줄 거라 믿고 편지의 해석을 전형우 교수에게 의뢰했다. 하지만 전 교수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해석을 내놓았고, 연구자들은 그에게 분노한다. 기자는 처음으로 범행동기가 나타났음을 깨닫고 직지 연구자들을 용의선상에 올린다.
전...
부인은 이후 12년 남짓 홀로 지내다가 70세가 된 1318년(충숙왕 5) 7월 2일에 병이 위독해졌다.
그녀는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묘련사(妙蓮社) 주지인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에게 청하여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법명을 성공(省空)이라 하였다. 법복(法服)을 갖추어 계(戒)를 받고, 노비 1명을 시주하여 출가시켰다. 11일 오시(午時)가 되니 목욕하고 옷을...
그러나 충선왕은 바로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넘기고 원으로 들어가 만권당(萬卷堂)을 짓고는 머물렀다. 혼자 남겨진 공주는 사찰에 행차하거나 충숙왕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소일하였다. 1315년(충숙왕 2) 공주는 원나라로 갔는데, 얼마 되지 않아 병들어 죽었다. 1343년(충혜왕 4) 원나라에서 계국대장공주로 추봉하였다.
다처제(多妻制) 하에서 처첩 간의...
원씨는 1334년(충숙왕 3) 47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녀는 원 간섭기 문벌귀족 가문의 여성의 삶을 잘 보여준다. 고려와 원 양국에서 벼슬살이하던 고려의 관리들, 그리고 무려 한 집안에서 수백 명의 노비를 소유했을 정도의 부의 편중,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의 집안 관리 능력을 인정했던 사회 등 여러 사실을 알 수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4녀는 찬성사 원충(元忠)과 혼인하였고, 5녀는 충숙왕의 왕비이자 충혜왕과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明德太后)이다. 딸 둘이 왕비가 되고, 딸 하나는 원의 고관대작과 혼인했으며, 그 자손들이 모두 높은 벼슬을 하여 가문의 성함이 고금에 비길 바가 없었다.
장녀가 원의 아홀대와 혼인한 데는 곡절이 있었다. 충렬왕이 공녀를 선발할 때 홍규의 딸도 거기에...
그런데 하나 있는 딸이 충숙왕 대인 1314년에서 1323년 사이에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끌려갔다. 고려가 원과 강화를 한 이후, 원에서는 고려에 매년 막대한 양의 공물과 공녀를 요구하였다. 국가에서는 결혼도감, 과부처녀추고별감(寡婦處女推考別監) 등의 관청을 설치하고, 13~16세 여성에 대해 금혼령을 내려 여자를 선발했다.
옹주의 묘지명(사진)에는 다음과 같이 공녀...
정화궁주는 1319년(충숙왕 6)에 세상을 떠났다. 궁주는 강양공(江陽公) 왕자(王滋)와 두 딸을 낳았는데, 강양공 역시 충렬왕의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원 공주 소생이 아니라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 정화궁주는 원과 고려 간의 퉁혼(通婚)으로 고려왕비가 피해를 본 첫 사례이며, 이후 이 같은 일은 원(元) 간섭기 내내 계속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즉 서기 1108년(예종 3년), 1226년(고종 13년), 1327년(충숙왕 14년) 기록들인데 모두 오성결집이 1년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오차가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고려 이후의 오성결집 기록들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황보 승 회원은 천문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수십 개의 오성결집을 찾아내 이...
고려사 예지는 충숙왕 12년(1325) 10월 “평양부에 명을 내려 기자의 사당을 세워서 제사하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14세기 들어서 평양에 기자의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기자가 평양에 왔다는 것은 유학자들이 정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유학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만들어진 역사이지 실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유학이 개국이념이었던 조선에서 이런...
또한 기황후와 삼각 로맨스를 엮어 갈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의 후비를 겁탈하기까지 한 방탕한 인물이다. 제작진은 뒤늦게 충혜왕을 가상 인물 왕유(주진모)로 변경하며 역사 왜곡 논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여전히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와 관련해 하지원은 “기황후는 37년 동안 거대한 제국을 장악한 대단한 인물”이라며 “사람들과 대립하는 대신 품을 줄 아는...
경화공주는 일찍부터 원나라의 황후가 되고자 했지만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아버지뻘 되는 충숙왕과 부부지연을 맺게 된다. 사치가 심하고 과시욕이 뛰어나며 지기 싫어하는 특유의 성격으로 원나라 황후인 타나실리 부럽지 않은 화려한 생활로 사는 인물이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경화공주는 피해자다. 충혜왕이 신하들을 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