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흠의 시조와 유본학의 수필 ‘옛집 정승초당을 둘러보고 쓰다’를 문제 지문에 따라 해석하는 문제였다. 진 교사는 “(EBS 교재와) 비연계 작품이었고 낯설어 세부 구조를 이해해야 했다"며 "그 의미를 다시 낯선 작품에 연결해야 해서 학생들에게 어려움을 느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난도 문항으로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 지문과...
최근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 선생의 글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났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기를 바라며 지은 문장은 지극한 문장이 아니며,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른 인물이 아니다.”[爲文而欲一世之皆好之 非至文也 爲人而欲一世之皆好之 非正人也]
상촌은 월사 이정구, 계곡 장유, 택당 이식과 함께...
“대한이 닥친 뒤에야 털가죽옷을 찾으니 이 또한 늦은 게 아닌가?”[大寒而後索認裘 不亦晩乎]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37세 때인 선조 35년(1602) 머리에 종기가 나 휴직 중에 ‘임인년 겨울 큰눈이 내려 우연히 읊다’[壬寅冬 病告値大雪偶吟]라는 시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청춘인데 옛사람들은 그 나이만 돼도 노인 흉내는 다 냈다. “늙은 나이 세월은 탄환보다 더...
조선 중기의 학자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으로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을 꼽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삶을 누리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책에서는 생각과 상상력, 꿈까지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리고...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인생삼락을 이렇게 꼽았다.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
다산 정약용은 ‘유수종사기(游水鐘寺記)’에서 세 가지 즐거움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계축옥사로 밀려났을 때 김포 가현산(歌絃山) 동봉(銅峰) 기슭에 감지와(坎止窩)라는 한 칸 초가를 지었다. 계축옥사는 소북세력이 영창대군(선조의 13남)을 옹립하려 한다고 대북 일파가 무고해 벌어진 정변(政變)이었다....
“봄기운에 정원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뒤이어 앵두 살구 복사꽃 오얏꽃이 차례로 핀다./냉이꽃 느릅나무 열매 마을 안에 깊숙하니/또한 말하리라, 봄바람이 나를 위해 불어왔다고.”[春風先發苑中梅 櫻杏桃李次第開 薺花楡莢深村裏 亦道春風爲我來]
매화예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야언(野言)’이다....
높은 벼슬은 하지 못했지만 시를 416수나 남겼다. 신흠·이정구·장유와 함께 조선시대 한문사대가의 한 사람인 이식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시인으로는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고위 공무원에는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