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자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회계사로 일하다가 미국 투자 회사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크락’에서 코리아 펀드를 운용하며 펀드 매니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존리는 “나는 월세를 살고 있다. 20억 있는 사람이 5억 짜리 집을 사는 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모든 돈으로 집을 사는 건 안...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수료하고 뉴욕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피트마윅(현재 KPMG인터내셔널)에서 7년간 회계사로 근무했다. 1991년부터 15년간 스커더스티븐스앤드클라크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활동했다. 스커더가 도이치뱅크로 인수된 이후에는 라자드 에셋매니지먼트로 이동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를 운용했다.
뉴욕대(NYU) 회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KPMG의 전신인 피트 마윅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다 1990년 스커더자산운용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성공스토리’가 시작됐다. 이곳에서 그는 1991년부터 한국시장에 투자하는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더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던 때였다. 한국을 직접 방문하며 성장성을 확인한 그는...
나와 스커더의 만남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리아펀드의 펀드매니저로 만난 스커더는 나의 투자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회사다. 주식은 사고파는 기술이 아니라는 철학, 마켓 타이밍은 잘못된 투자 방법이라는 것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교훈들을 스커더에서 배웠다.
안타깝게도 입사한 지 15년 만에 회사가 주릭(Zurich)이라는 스위스 보험회사를 거쳐...
회계법인에 근무할 당시 같은 건물에 ‘스커더스티븐스&클라이크’사( 社)가 있었다. 펀드 매니저를 꿈꿨던 그는 스커드가 ‘코리아 펀드’를 운용한다는 말에 문을 두드렸다.
존 리 대표는 “스커드에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버드, MIT 등 명문대생이었다. 모두가 뉴욕대 출신인 나에게 도전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했었다”며 “잃을 것도 없기에 스커드에...
이들은 존리 대표의 예전 근무처인 스커더인베스트먼트와 라자드운용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다.
한편 존리 대표는 1990년대 삼성화재, SK텔레콤 등 저평가 주식을 사들여 미국 월가에 ‘코리아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국내에선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 일명 ‘장하성 펀드’를 운용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유명하다. ‘좋은 주식에 오래투자 한다’ 는...
스커더, 라자드 등 굴지의 외국계 운용사에서 국내기업인 메리츠운용으로 이직한 것도 결국 메리츠금융지주가 운용의 독립성 등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 스타일을 지향하는 그는 메리츠운용에서도 투자 할 기업의 가치와 펀더멘털에 집중해 운용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실제 존 리 대표는 주가 지수 대신 기업 경영진의 도덕성 등 지배구조에 더...
김 대표가 금융투자업계로 인생의 전환점을 돌린 것은 2000년 당시 스커더인베스트먼트가 서울 사무소를 개소하면서 부터다. 존 리 스커더인베스트먼트 매니저와의 인연으로 한국 사무소에 IT애널리스트로 합류했다. 김 대표의 멘토인 존 리 전 라자드운용 전무와의 인연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2005년 라자드자산운용이 한국법인을 설립하면서 존 리 전무와 함께...
1969년생인 김 대표는 2000년 스커더인베스트먼트코리아와 2002년 도이치투자신탁 운용을 거쳐 최근까지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역임했다.
메리츠자산운용 관계자는“김 대표가 주식운용총괄(CIO)까지 겸임한다"며 "김 대표가 시장에서 검증받은 전문가인 만큼 향후 주식형펀드 성과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