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인 박 초대회장은 1952년 OB맥주, 60년대에는 두산산업개발ㆍ두산음료 등을 설립, 두산을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67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해 1973년 타계할 때까지 7년간 대한상의 회장(6~8대)을 지냈다. 박 초대회장이 재임하는 동안 대한상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 성장했다. 대한상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민간 경제...
조선말기 포목상 시절부터 보존해 온 다양한 사료 전시…100년 전 주식증권, 직원명부 등 통해 근대기업 역사 볼 수 있어
‘두산 헤리티지 1896’은 박승직 두산 창업주가 1896년 종로 배오개(종로4가)에 터를 잡고 시작한 ‘박승직상점’ 시절부터 근대기업의 면모를 갖춰가던 20세기 초반의 다양한 사료들을 통해 우리나라 초기 기업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두산의...
두산그룹의 창업주 매헌 박승직 선생은 1907년 거족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해 거액을 기부했다. 이때의 기부로 두산은 2001년 국채보상운동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서상돈 상을 받기도 했다.
LG그룹의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1942년 독립군 양성을 위한 자금으로 쓰라고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쌀 500가마니 값에 상당하는 1만 원을 희사했다. 당시 일제로부터...
미국 경제인들과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더욱 긴밀하게 교환하기 위한 차원에서 정 부회장이 대신 나서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작년 3월부터 ‘두산 4세 경영시대’를 열고 있다. 박 회장은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고(故) 박두병 창업 회장의 맏손자다. 박두병 회장의 부친인 박승직 창업주부터 따지면 두산가 4세에 해당한다.
두산그룹은 박승직 창업주와 2세대 박두병 초대회장을 거쳐 3세대 박용곤→박용오→박용성→박용현→박용만으로 이어지는 ‘형제 경영’을 고수해 왔다.
지난 2005년 박용오 회장이 두산건설을 통해 계열분리를 요구하면서 ‘형제의 난’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무리 없이 형제간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형제경영이 이뤄질 수밖에...
내달 1일을 두산 창업주 매헌 박승직이 1896년 서울 종로 4가 배오개에 두산의 시원(始原)인 박승직 상점을 연 지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상점은 1946년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상호를 두산(斗山)상회로 바꿨다. 이는 박승직 창업주가 지어준 상호로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박두병 회장의 부친인 박승직 창업주부터 따지면 두산가 4세에 해당한다. 큰 조카인 박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준 박용만 회장은 지난 4년간 그룹을 이끌어왔다.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일하게 된다.
앞서 박 회장은 지난 25일 (주)두산 이사회에서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박용만 회장에 이어 공식적으로...
100년 기업인 두산그룹이 1896년 박승직 상점으로 출범해 형제경영과 장자상속의 원칙을 4세까지 잇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한 번은 거쳐야 할 산통 같은 의식처럼 보여졌다. 볼썽사나운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지금도 재계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심지어 법정소송으로 비화되며 형제간 의절 사태까지...
박 부사장은 두산그룹 박승직 창업자의 증손자이자 박두병 초대 회장의 손자로 현 박용만 회장의 장남이다. 두산은 동대문 두타(두산타워)에 면세점을 만들어 내년 중 영업에 들어갈 예정인데 그룹이 새로 진출한 면세점 사업을 30대 중반의 오너가 4세에게 맡긴 셈이다.
코오롱도 4세가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이규호(31)...
두산의 역사는 지난 1896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근대적 상점 박승직 상점에서 시작됐다. 100년 넘게 주류·의류 등에서 유통 DNA를 이어오고 있다고 자부한다. 신개념 패션몰 두타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면세점 사업 유치에 전 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대문 상권 부활 이끌다 = 두산은 만약 이번에 면세점 영업 특허를 따면 서울 중구 장춘단로 두타...
두산가는 박 회장의 할아버지인 고(故) 박승직 창업주 때부터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다. 박 회장의 부친 고(故) 박두병 전 두산그룹 회장도 천주교 신자였다.
박 회장의 세레명은 실바노로 종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보에 글을 기고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미사 때는 명동성당을 찾아 가장 앞자리에 앉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박...
두산가(家)는 박 회장의 할아버지인 고(故) 박승직 창업주 때부터 대대로 천주교 집안으로, 박 회장의 부친 고(故) 박두병(바오로) 전 두산그룹 회장도 천주교 신자였다.
박 회장의 세레명은 실바노로 종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미사 때는 명동성당을 찾아 가장 앞자리에 앉기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서서...
두산그룹은 1946년 설립된 무역업체 두산상회가 모기업이지만, 그 출발은 1896년 문을 연 박승직상점이다. 1936년 창업주 박승직 회장(1950년 타계)이 장남 박두병 초대 회장(1973년 타계)에게 경영을 넘기고 물러나면서 그룹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2012 회계연도 기준 총자산 규모는 29조4250억원대로 대기업 집단(공기업 제외) 순위 13위다.
두산그룹의 전체 계열사...
두산의 창업주 고(故) 박승직씨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박승직 창업주는 15년 동안 보부상, 등짐장사 등 상인생활을 했다. 그러다 1896년 조선 후기의 서울 3대 시장(종루 앞 시전상가, 남대문 밖 칠패시장) 중 하나인 배오개시장(지금의 종로 4가)에 포목상 ‘박승직상점’을 열었다. 이후 박승직 창업주는 승승장구했다. 1906년에는 한국 최초의 경영인 단체인...
박용만 회장이 걸었던 베오개에서 해남까지, 인천에서 강릉까지의 길은 할아버지인 박승직 창업주가 100년 전 다니던 길이다. 고 박승직 창업주는 젊은 시절 3년 간 해남에 머무르며 지역상인들과 교류하며 사업을 익히고 종자돈을 번 뒤 서울 배오개에 오늘날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을 열었다.
업계에서는 박용만 회장이 국토 횡단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박승직의 두산 대장정
1896년 8월 1일. 종로 4가 배오개 시장 15번지에 ‘박승직상점’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186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박승직 창업주가 10여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보부상으로 활동하다 33세 되던 해에 배오개에 점포를 개설해도 좋으리라는 결론에 꿈을 실현했다. 그 꿈이 험난한 현대사를 관통해 끈질긴 기업으로...
두산 측은은 '한 말(斗),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山)같이 커져라'는 의미로 사명을 '두산(斗山)'이라고 명명한 故 박승직 창업주의 유지를 기려 '황금말(斗)통'을 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대상을 수상한 두산인프라코어 건설기계 사업부문 아시아태평양/이머징 마켓은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건설중장비 부문 시장점유율이 10%를...
6일 두산과 동화약품에 따르면 두산은 1896년 종로에서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했고 동화약품은 1897년 순화동에 문을 연 동화약방이 시초다.
단순히 연도만 따지면 두산이 1년 차이로 최장수 기업이 되는 게 맞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같은 자리에서 한 업종으로 명맥을 이어온 동화약품을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보기도 한다. 두산의 경우 1945년 박승직 상점이 문을...
고 박두병 회장은 지난 1910년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두병 회장은 1936년 박승직 상점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1951년 박승직 상점의 이름을 두산상회로 바꾸면서 두산 시대를 열었다.
박두병 회장은 당시로는 드물게 경성고등상업학교(現 서울대 상대)를 나온 수재로 1952년 동양맥주, 1953년 두산산업, 그리고 1960년 두산건설 설립 등을 통해...
- 지난 악재 딛고 불황속 정면 돌파 선언 관심
- 100년 넘긴 가족경영 다음세대에도 순항할까
그 출발이 1896년 8월 1일 창업한 ‘박승직 상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두산그룹은 국내 재벌그룹 중 100년 역사를 넘기는 유일한 곳이다. 두산그룹은 2007년 '밥캣' 인수와 지난해 글로벌 경제 위기까지 맞물려 유동성 논란으로 일대 홍역을 치룬 바 있다.
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