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원스'의 구질구질함이 그리운 마니아들이 영화 '비긴 어게인'을 찾는다면 말리고 싶다. 차라리 영화 '인사이드 르윈'이나 '댓 싱 유 두'를 보라. 이들 아날로그 음악영화와 '비긴 어게인'은 태생부터 다르다. 쉽게 말해 '비긴 어게인'은 재벌 집 도련님 같은 디지털 음악영화다. 나무로 만든 통기타는 전기로 움직이는 일렉으로 바뀌고, 신디사이저에 밀린 마케타 잉글로바의 피아노는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 라이브보다는 녹음과 믹싱이 우선이다. 음악은 '우리 만의 것'이 아닌 '공유하는 것'이니까.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은 한물간 음반 프로듀서와 락스타의 여자친구다. 프로듀서는 잘 알다시피 어벤저스의 헐크다. 락스타는 세계적인 밴드 '마룬파이브'의 보컬이고, 그의 여자친구는 잭 스페로우가 사랑하는 블랙펄의 홍일점이다. 이런 든든한 빽을 딛고 '비긴 어게인'은 당연하다는 듯 흥행에 성공한다.
다만 '비긴 어게인'에서는 전작 '원스'에서 보였던 풋풋한 아련함과 절박감, 마이너한 포크 음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애플의 명기 아이폰과 방금 면도하고 나온 깔끔한 브리티쉬팝이 관객을 접대한다.
기본적으로 '비긴 어게인'에는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음악이 있다. 전자음이 가미된 다양한 사운드와 펑크, 팝, 힙합 등이 퓨전된 음악은 '쿨'한 뉴욕과 어울리며 도심 홍보자료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경이로운 것은 자체 믹싱이 걸린 듯 청아한 애덤의 목소리다. 그의 'Lost Stars'나 'No One Else Like You' 같은 음악은 국내에서 외국 영화음악으로는 받기 힘든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비긴 어게인'에 가장 잘 녹아든 인물은 키이라 나이틀리다. 존 카니 감독은 '비긴 어게인'의 첫 장면을 키이라 나이틀리의 라이브 무대로 꾸민다. 영화를 보기 전 관객이 가장 기대하고 궁금해하는 '비긴 어게인' 최고의 무기를 시작과 동시에 꺼내 든 것이다. 물론 키이라 나이틀리는 존 카니 감독이 자신감을 가질 만큼 맡은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사랑스럽고 치아가 반듯한 여배우가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램이 남는 것은 키이라 나이틀리의 아라비안나이트풍 바지처럼 약간 함정이다.
존 카니 감독의 전작 '원스'에는 음악에 대한 독특한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악기판매점에서 남녀가 합주를 하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곡을 만드는 장면이 그렇다. '비긴 어게인'도 예외는 아니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A Step You Can't Take Back'에 맞춰 마크 버팔로가 악기를 하나씩 움직여 조합시키는 장면이나, 와이 잭을 끼고 스티비 원더의 'For Once In My Life'를 들으며 밤거리를 거니는 장면, 헤어진 남자친구의 휴대폰 음성 메시지에 음악을 녹음해두는 장면들은 새롭지는 않지만 눈길을 끈다.
특히 음악에 접근하는 다양한 각도와 그 안에 녹인 사회적 메시지는 전작 '원스'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아마 '원스'로 스타 감독의 반열에 들어선 존 카니에게 무겁게 내려진 일종의 책임감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그게 '오버'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관객 개개인이 내릴 문제다.
아무튼 '비긴 어게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듣는 음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든가 "음악은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는 음악에 대한 존 카니 감독의 메시지다. 물론 그중 최고는 바로 이 대사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거든. 이런 평범함도 음악이 들어서면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지. 그게 바로 음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