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검사의 칼 끝은 무뎌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불거진 금융권의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금감원의 미숙한 대응으로 금융권은 오히려 더 냉정해졌다. 한때 금융권의 저승사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소불위 권위를 자랑했던 금감원의 권위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급기야 시장에서는 앞으로 금감원의 징계와 검사 등에 대해 영(令)이 서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금감원에 대한 금융권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생보사들이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금감원의 권고를 거부하고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은 분쟁조정국에 접수된 자살보험금 관련 민원 39건에 대해 해당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 여부를 지난달 30일까지 결정해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 중 중소형 보험사인 현대라이프와 에이스생명 등 2곳만 금감원 권고대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보고했다.
보험사들이 금감원에 정식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처럼 금감원의 지시에 반발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은행권 전·현직 수장들에 대한 징계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스스로 역풍을 자초했다. 외부 입김에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등 KB금융 임직원 120여명에 대한 제재수위를 결정하지 못하고 석 달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면서 감독기구로서의 위상이 추락했다.
심지어 지난 4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한 사안을 세 차례나 검사할 정도로 금감원이 한가한 조직이냐”며 노골적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금감원과 미술품 구매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해 마찰을 빚었다.
같은 시기 김종준 하나은행장에 대한 징계 내용을 조기에 공개키로 하는 등 사퇴를 압박했지만 오히려 관치금융을 한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중징계 발표 당시 김 행장은 영업점장들과 함께 조찬을 진행하는 등 여유까지 부리는 모습을 보였다.
최수현 금감원장의 허술한 내부 통제도 금감원의 권위에 먹칠을 했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 간부가 1조8000억원대 대출사기 사건 핵심 용의자의 도피를 도운 것으로 밝혀졌다. 불가항력이었다는 지난해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건과 연초 카드3사 정보유출 사건 등과 도덕성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한편 금감원이 설상가상으로 고유 권한으로 여겼던 제재권 일부도 금융위원회에 반납해야 한다. 금융권은 이를 두고 향후 금감원의 위상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