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은 시시한 영화다. 아이들의 세계가 대개 그렇듯 대단할 것도 엄청난 것도 없다. 그저 적당히 한발 물러나 팔짱을 끼고 '나도 한때 저랬지'하고 꾸벅꾸벅 졸게 된다. 하지만 그게 영화 '기적'을 대하는 가장 멍청한 자세라는 걸 곧 알게 된다.
영화 '기적'이 말하는 진짜 기적은 아이들의 시시한 일상을 통해 드러난다. 친절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끝까지 눈치 못 챈 관객들을 위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숨겨둔 비장의 기적들을 대방출한다. 빨간 물감, 전자 온도계, 양배추가 들어간 나베, 교복, 삼각 수영복, 누에콩 새싹, 자판기 밑 동전, 하와이언 춤, 어깨를 두드리는 손, 강아지 마블, 먼지, 가족, 밍밍한 가루칸, 자전거벨, 코스모스, 형제의 사진, 아버지의 CD 그리고 파란 하늘 등.
영화 '기적' 속 기적은 화산폭발처럼 대단하고 엄청나지 않다. 물을 주면 조금씩 자라다가 '톡'하고 터지는 소소한 누에콩 같다. 세계를 위해 화산폭발을 포기한 13살 코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복숭아는 3년, 감은 8년을 기다려야 열려. 그래서 그렇게 맛있는 거라고!"
영화 '기적'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불친절하다. 깊은 감정선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나와야 할 익숙한 타이밍에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도 잦다. 예를 들어 엄마 노조미가 천진난만한 류와 통화하며 흐느끼는 장면은 음악의 세례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찝찝하게 이어진다. 이런 리얼리즘은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던 고레에다 감독의 특징으로 보인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현실성을 위해 영화 '기적'의 두 주인공으로 실제 형제를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를 이들에 맞춰 대폭 수정했다고 한다.
한편, 넋 놓고 영화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음악이 나오고 있을 때도 있다. 영화 '기적'에 수록된 밴드 '쿠루리'의 음악이 기본적으로 가벼운 질량을 가졌기 때문이다. 8비트의 드럼과 깔짝거리는 일렉의 피킹, 탬버린과 클라리넷 등은 영화 속 아이들처럼 경쾌하다. 특히 류의 등교길을 이끄는 4번 트랙 '학교에 가자'는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에 삽입된 '컨트리로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 일본과 컨트리가 이렇게 잘 어울렸었지!' 쿠루리는 새삼 그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영화 '기적'이 국내에 개봉하기 전부터 쿠루리가 부른 '기적'은 화제였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속 음악으로 쿠루리의 영화음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역시 영화 '기적'에서도 쿠루리의 음악은 대단하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정직하고 깨끗한 쿠루리의 음악에는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마법이 깃들어 있다.
영화 속 코이치의 외할아버지는 가루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도 가슴이 저릿저릿할까?" 가슴이 저릿저릿한 이유는 바라던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라던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지금 혹시 저릿저릿한 가슴을 가을 탓으로만 돌리는 이들이 있다면 플레이 버튼을 눌러라.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쿠루리의 '기적'이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