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1949년에 편입된 마포구 상암동.
역사 속에서 이곳은 언제나 변두리였습니다. 기록조차 찾기 힘듭니다. 조선 시대 한성부 북부에 속한 어느 한적한 동네로 기록된 게 전부입니다. 일본강점기엔 관동군의 대대 병력 주둔지, 현대사에서는 난지도로 대표되는 매립지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만, 2014년 현재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악취가 진동하던 난지도는 나들이 공원으로, 주변의 황무지엔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며 말 그대로 '천지개벽'한 겁니다. 최근엔 DMC 단지까지 활성화돼 일대는 복합미디어 산업단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변방에 속했던 이곳은 새롭게 꿈틀대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그 연장 선상에 마포 석유비축기지의 변신도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름도 낯선 석유비축기지, 상당수의 동네 주민들조차도 이곳의 정체를 모를 정도입니다.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 있는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10만 1510m² 부지 위에 지어진 공공 구조물입니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며 정부가 석유비축 정책을 추진해 만들어진 산업화의 산물입니다. 높이 15m, 지름 15∼38m의 대형 석유탱크 5기에는 131만 배럴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성장제일주의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산업화의 밑거름인 에너지, 석유 확보의 첨병으로서 말이죠. 1970~80년대의 경제 성장 원동력에 적게나마 보탬이 된 우리나라 경제 발전사의 산증인입니다.
그러나 2000년이 되자 상황은 달라집니다. 중요 시설로 활용됐던 이곳은 가혹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인근에 상암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며 '대규모 화학물질 시설이 경기장 근처에 있을 순 없다'는 논리로 사용이 금지됩니다. 결국, 1979년부터 유지되던 시설이 문을 닫게 되고 그 기능은 용인 기지로 이전되며 잊혀집니다.
한때 정부의 에너지 수급 정책을 뒷받침하던 이 구조물은 이후 근 13년 넘도록 산속에 버려졌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후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아 탱크 전면부는 녹이 자욱하고, 입구는 공포영화의 배경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다행인 건 이 흉물스러운 시설이 변화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최근 서울시는 '마포 석유비축기지 국제현상설계 공모전'을 펼치며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킬 계획을 내놓습니다. 그 결과 지난달 25일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 1등 수상작으로 선정돼 본격적인 설계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오는 10월 설계 계약을 마치고 2016년 말까지 석유 기지는 극장과 전시시설을 갖춘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입니다.
서울의 변두리에서 서북권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암동. 아직까진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각종 방송사와 대기업들의 입주로 활기를 띠긴 했지만 상징적인 문화 공간은 없었습니다. 그 역할을 탈바꿈하는 석유비축기지가 해낼 수 있을까요.
한국 산업화의 단면을 보여주던 이곳이 이젠 새로운 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할지요. 나들이 장소가 된 난지공원처럼 사랑받는 공간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