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백혈병 보상 관련 협상을 벌여온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결국 두 개로 나눠져 삼성전자와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하면서 향후 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대화 주체는 삼성전자의 선보상안을 받아들인 피해자 및 가족 6인과 보상대상 확대와 사과, 재발방지책 등을 요구하는 반올림측 나머지 2인이다. 반올림이 사실상 협상 대표로서의 지위를 잃으면서 선보상안에 찬성하는 피해자 및 가족을 중심으로 백혈병 보상이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다.
삼성전자와 반올림, 피해자 및 가족 6인으로 구성된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는 3일 오후 2시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7차 대화를 가졌다. 이날 송창호씨를 포함한 6인은 가족대책위를 통해 삼성전자와 독자 협상을 벌인다고 밝혔다. 반올림측이 피해자 및 가족 전체를 대변하지 않은 채 활동가 중심의 정치적 행보를 지속함에 따라 협상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올림 내부의 분열은 지난달 13일 열린 6차 협상부터 시작됐다. 이날 반올림측 피해자 및 가족 8명 가운데 5명이 삼성전자의 선보상안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협상 참여자들 간 이견이 발생했다. 여기에 지난달 18일 반올림측이 선보상안을 수용한 5명을 제외한 3명과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가족 및 피해자들과 함께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책임 있는 보상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반올림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송씨는 이날 7차 대화 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지난 1년 6개월간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어떤 진전도 없었다”며 “대화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 삼성전자와의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간 반올림측 협상단으로 참여하면서 피해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낼 기회는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보상만 받고 끝내자는 게 아니라 정체된 교섭에 진전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고 반올림측과의 협력 여지를 남겼다. 의견 차이로 가족대책위를 통해 별도 협상을 진행하지만 궁극적으로 반올림측과 나아가는 방향은 같다는 설명이다.
협상단이 둘로 나뉘면서 백혈병 보상이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피해자 및 가족에 대한 보상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보상안을 수용한 6인에 대한 보상을 시작으로 보상 기준 마련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
반올림이 두 개의 협상 채널로 나뉘면서 현재 반올림 측에는 황상기씨와 김시녀씨 등 2명의 피해자 가족만 남은 상태다. 가족대책위는 김은경, 송창호, 유영종, 이선원, 정애정, 정희수씨 등으로 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