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52)은 연기로 말한다. 1988년 영화 ‘수증기’로 스크린에 데뷔한 최민식은 ‘쉬리’, ‘올드보이’, ‘파이란’, ‘주먹이 운다’,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런 최민식이 2014년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다. ‘명량’은 개봉 18일 만에 ‘아바타’(2009)를 제치고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5년 만의 대기록이다. 한국영화 최초로 1500만 관객도 돌파했다. 최고 오프닝·일일·평일 스코어를 모두 경신했고, 100만부터 1000만까지 관객 추이 자체가 신기록이었다. 전문가들은 “10년간 ‘명량’의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명량’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에 승리한 드라마 같은 역사적 사실과 어려운 시기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갈망, 스펙터클한 해상 전투신 등 갖가지 흥행 요인을 가지고 있지만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의 존재감을 전제로 한다. 최민식은 풍전등화 상황에 놓여있는 이순신의 고민과 백성을 생각하는 따뜻함, 전장에서의 용맹함을 표현했다. “군율은 지엄한 것이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라” “장수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 등의 명언은 도서, 드라마 등을 통해 잘 알려진 내용이었지만 최민식은 자신만의 이순신을 탄생시켰다. 김진성 영화평론가는 “영화 개봉 전 이 정도의 흥행을 기대하지는 못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대중의 궁금함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분위기가 경이로운 흥행 기록에 한 몫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순신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연기한 최민식의 연기력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명량’의 캐스팅 제의를 받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신화와 같은 존재 아닌가. 익히 알고 있는 책 속의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으로 접근했다. 혹시 누가 되진 않을까 거대한 존재감에 부딪혔다”고 토로했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혼이 담긴 엑기스 전쟁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을 담은 영화가 될 것이다. 최민식의 나이와 내공을 봤을 때 적역이었다. 다른 사람은 대체불가다”고 말했다.
‘명량’의 흥행은 해당 작품의 영광을 넘어 한국영화 전체의 호황과 시장 확대를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영화는 상반기 ‘수상한 그녀’(865만명)와 ‘끝까지 간다’(344만)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흥행작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자 지난해 2년 연속 1억 관객 돌파라는 호재를 맞은 한국영화 시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명량’의 흥행은 한국영화계에 단비와 같은 존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어린 아이부터 10대 20대의 젊은 관객, 중장년층과 노년층까지 전 세대의 관객들에게 호평을 모으며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도둑들’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1000만 영화들이 감동과 웃음이 가미된 스토리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끈 것에 반해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깊이 있는 스토리와 장엄한 전쟁신이 담긴 정통 사극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며 최다 관객을 수립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