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음악의 이해
영화 '클래식'의 음악을 소개하기 전 영화음악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해야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화음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특정영화에 삽입하기 위해 처음 작사·작곡된 이른바 맞춤형 영화음악이다. 그간 '영악한 이야기'에서 소개했던 영화 '시월애', '원스', '댄인러브'의 음악들이 이런 종류다. 이 경우 영화음악감독은 대부분 싱어송라이터의 능력을 지닌 경우가 많다.
또 한 가지는 이미 한 번 발표됐던 기존의 음악을 영화음악으로 삽입한 경우다. 이 경우 영화음악 감독은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직접 선정해 배치하는 선곡가의 역할을 한다. 이런 후자의 영화음악감독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 조영욱 감독이다. '2014 제천영화음악상'의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 영화음악 사상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영화 '접속'의 음악감독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신세계', '변호인' 등 수많은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그의 필모그래피의 정점을 찍은 영화가 바로 '클래식'이다.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사랑하면 할수록'
할리우드 영화 중에는 초능력자들이 총출동하는 '어벤져스'라는 히어로물이 있다. Mnet '댄싱9'의 출연자 김설진은 서로 다른 춤을 추는 팀원들에게 이 '어벤져스'를 언급하며 "어벤져스가 왜 재미있는지 알아요? 히어로들의 능력이 다 다르니까"라고 말해 화제를 모은 적 있다. 영화 '클래식'의 음악도 그렇다. '클래식'에 삽입된 음악들은 각자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 조영욱 감독의 능력이다.
'클래식'의 주제곡 '사랑하면 할수록'은 싱어송라이터 유영석의 '회상'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사랑하면 할수록'은 1번 트랙에서 가수 한성민의 목소리로 표현된 것 외에, 3번 트랙 '엄마의 연애편지'와 11번 트랙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의 피아노, 18번 트랙 '강가에서'의 바이올린과 첼로, 이밖에 클라리넷과 피콜로, 리드 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된다.
무엇보다 이 곡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영화의 21분 30초경부터 약 5분간이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하는 장대비와 누런 갈대밭의 원두막, 설탕 가루를 뿌린 듯 빛나는 별 밤, 형광의 반딧불,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 그리고 4번 트랙 '반딧불이'의 클라리넷 선율은 아마 '클래식'을 통해 감독이 관객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영화 '클래식'의 줄거리는 과거와 현재 두 가지로 나뉜 흔히 말하는 액자식 구성이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과거의 준하(조승우)와 주희(손예진), 현재의 상민(조인성)과 지혜(손예진)를 이어주는 것은 그룹 '자전거 탄 풍경'의 음악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다.
예를 들어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멜로디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3박자 왈츠가 되어 준하와 주희의 포크댄스를 이끌다가 곧 통기타 어쿠스틱으로 변해 깜빡이는 가로등 밑의 준하와 주희를 환히 비춘다. 흘러나오던 음악은 다시 현재로 넘어와 지혜의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3중주로 바뀌었다가, 이내 비 오는 캠퍼스를 함께 뛰어가는 상민과 지혜를 빛내주는 음악이 된다. 특히 상민과 지혜가 함께 겉옷을 쓰고 캠퍼스를 뛰어가는 장면과 음악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은 '클래식'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사실 '클래식'의 곽재용 감독이 영화의 콘티 작업 때부터 점찍어둔 음악은 '사랑하면 할수록'과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아니었다는 일화가 있다. 당초 그룹 'Simon&Garfunkel'의 'The Sound of Silence'를 넣으려고 했으나 작곡가인 폴 사이먼의 반대로 저작권 협상이 결렬됐고, 뒤늦게 '사랑하면 할수록'과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급하게 삽입됐다. 이 자리를 빌려 사이먼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땡큐 사이먼"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故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넣어뒀던 조영욱 감독은 영화 '클래식'에서도 또 한 번 김광석의 곡을 선택했다. 결과는 신의 한 수였다.
선택된 김광석의 곡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로 정작 '클래식'에서는 영화 말미에 두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 번은 월남으로 파병가는 준하를 주희가 기차 창문 밖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과 돌아온 준하가 주희를 앞에 두고 눈이 보이는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딱 두 번일 뿐인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음악의 전주 부분에 흐르는 구슬픈 하모니카 소리만 맴돌게 된다. 그만큼 '클래식'의 마지막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한 조각 남은 퍼즐처럼 꼭 맞아떨어진다. 이 음악이 아니었다면 어떤 음악으로 대체할 수 있었을까? 잘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한 건 'The Sound of Silence'는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