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채권 금리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수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 경제의 낮은 경제 성장세와 디플레이션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파이낸셜뉴스(FT)에 따르면 독일 10년물 국채(분트) 금리는 29일(현지시간) 1.12%를 기록했다. 이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1920년대를 제외하고 1800년대 초 이후 독일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초유의 금리 하락세는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최근 네덜란드 채권 금리는 500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스페인도 이번주 2.47%로 떨어지면서 20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프랑스 10년물 채권도 이날 1.52%를 기록하면서 250년만에 최저치 기록을 새로 썼으며 이탈리아 채권 금리도 이날 2.65% 떨어지면서 194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짐 리드 도이체방크 신용 전략가는 “(유럽) 역사상 전례없는 특이한 현상”이라면서 “글로벌 주요국들이 신용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이례적으로 낮게 유지하면서 유럽지역에 저금리 현상이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주요국의 저금리 기조와 더불어 지정학 리스크 등 일련의 사건들이 채권 가격을 부추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통상 채권가격과 수요는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특히 이달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상공에서 피격된 사건은 시장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에 이번 여객기 피격사건과 관련해 새 경제 제재를 펼치기로 합의했으며 이는 유럽 지역의 채권 금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유럽권의 경제 제재가 채권시장에 역풍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채권시장의 저금리 흐름을 실질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정치적 요소가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타개하려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이라고 FT는 지적했다. 현재 ECB는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책정하고 국채를 매입하는 미국식 양적완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등 디플레이션 타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ECB의 노력에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낮다.
앤소니 오브리언 모건스탠리 유럽금리 전략가는 “유럽 경제 회복세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유지하는 한 유럽 채권 금리도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낮은 경제 성장세, 낮은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현 채권시장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