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살아야유통이산다③]유통업 입지 줄이는 보이지 않는 제재… ‘동반성장지수’

입력 2014-07-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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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상반기가 시작되는 첫날, 박근혜 대통령은 충북 청주의 한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첫 민생현장을 찾은 것이다. 삼겹살 특화거리로 유명한 청주 서문시장에서 박대통령은 10여명의 상인들과 즉석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상인들은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가 급감하면서 전통시장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전통시장을 활성화해 내수를 살리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대형마트 때문에 전통시장이 어렵다는 한 상인의 하소연을 듣고 박 대통령은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식으로 ‘윈-윈’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동반성장지수를 매길 때 더 높은 점수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인과의 대화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동반성장지수'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보름 후,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 신세계와 롯데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날 전통시장 지원 관련 발표를 했다. 신세계는 전통시장 현대화에 앞장서겠다며 5년간 100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전용 디자인 비닐봉투 제작하고 핵점포 리모델링 등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 지원이 주 내용이었다. 롯데마트 역시 전통시장 상생발전기금으로 연 10억원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대형마트 간 공동 판촉행사, 매출 활성화 이벤트, 매장 리뉴얼 지원, 위생 및 안전점검 지원 등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동반성장 노력했는데… 꼴찌 못 면하는 유통기업들= 대통령까지 챙기는 동반성장지수 점수를 높이기 위해 유통업체들은 협력업체와의 상생활동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 최하위 등급을 받은 기업 14곳 가운데 6곳이 유통업체였다. 반면에 최고 등급을 받은 유통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당장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유통기업들은 동반성정지수 평가기준과 방식이 제조업에 유리하고 유통업에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제조업의 경우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관계가 수직적이라 점수 산정에 유리하다"며 "아무리 협약을 맺고 이행을 해도 점수 자체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구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동반성장지수는 동반위가 대기업 협력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체감도 평가를 한 것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 및 협약이행 실적평가를 합산해 등급을 매긴다.

실제로 동반성장지수 평가기준을 보면 금융지원 부분이 점수의 절반 가량 차지하고 있다. 해외 판로개척이나 경영 컨설팅 지원, 교육 프로그램, 기술 지원 등 수치화되지 않는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는 유통기업들로선 불리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동반성장지수는 자발적으로 동반성장 노력에 참여한 유통업의 입지를 좁히는 보이지 않는 제재"라며 "동반성장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기업을 줄세우는데만 악용되는 것 같다"고 문제삼았다.

◇업종별 형평성 고려한 맞춤형 평가 절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11일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면서 "동반성장을 잘하는 기업들 간에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모두 자율적으로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리스트에 있는 기업들은 동반성장을 잘하는 축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츼 체감은 정반대다. 낮은 등급을 받는 기업들은 외부에 동반성장을 못하는 곳으로 낙인이 찍힌다. 특히 유통기업들은 비합리적 평가 방식 때문에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다.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동반성장위는 올해 6월 동반성장지수 공표에서 동반성장지수 4개 등급의 명칭을 변경했다. 기존의 ‘우수-양호-보통-개선’ 등급을 ‘최우수-우수-양호-보통’ 등급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유통기업들 대부분이 올해도 가장 낮은 보통 등급에 머무르면서 동반성장 낙제생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악순환은 동반성장지수 평가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 위원장이 말했듯이 동반성장 평가에 자율적으로 참여한 기업들은 대부분이 동반성장에 힘을 쏟는 기업들"이라며 "동반성장 이행 수준을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맞춤형 평가방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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