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구 감독의 추태가 농구팬들을 분노케 했다. 경기 중 심판에게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코트 안까지 들어가 심판의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기도 했다. 그는 농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도, TV를 통해 지켜본 시청자도, 멀리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손님도 안중에 없었다. 그의 독기 품은 눈빛은 오로지 승리를 울부짖고 있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그의 광기어린 행동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재근(45) 연세대학교 농구부 감독이다.
사건 발생은 지난 10일이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정재근은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 KCC 아시아 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결승전 고려대와의 경기 도중 심판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고 폭언을 하다 퇴장 당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농구 감독의 추태는 불과 몇 개월 전에도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본 적이 있지 않은가. 프로농구 부산 KT의 전창진 감독은 지난 3월 창원 LG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장으로 들어가 심판의 몸을 밀치며 강하게 항의하다 퇴장 조치됐다.
당시 경기장에는 이통사 라이벌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을 관전하기 위해 많은 관중이 운집해 있었다. 그러나 전 감독의 승리에 대한 열망은 광기에 가까웠다. 퇴장 명령이 떨어진 뒤에도 계속해서 심판을 밀치며 항의, 농구팬들의 분노를 샀다. 그리고 넉 달 뒤 농구판 추태는 그대로 재현됐다. 그것도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 스포츠에서 말이다.
대체 이유가 뭘까. 한국 쳬육계는 경기장 폭력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원인은 폭력 불감증과 솜방망이 처분이다.
전창진 감독은 당시의 농구장 추태로 1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500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다. 결국 이번 사건은 농구 단체의 솜방망이 처분이 폭력 불감증을 키운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체육계의 폭력 불감증은 뿌리 깊다. 일부에선 운동선수의 경기력과 체벌은 비례한다는 주장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유도 73㎏급 은메달리스트 왕기춘(26)은 지난 5월 30일 용인대 유도부의 체벌 문화를 비판하는 한 SNS 글에 체벌을 옹호하는 댓글을 남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체육계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온 행동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모든 게 승리지상주의의 병폐다. 프로 스포츠도 아닌 대학 스포츠다. 그들에게 경기장은 곧 강의실이요 배움의 터전이다. 땀 흘려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고 감동과 환희, 좌절과 아픔을 동시에 경험하는 체험 현장이기도 하다.
지성인을 지도하는 대학 감독도, 스포츠 영웅이라 일컫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방관하고 있다는 게 한국 체육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한농구협회는 15일 오전 상벌위원회를 열고 정재근 감독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제 2ㆍ3의 경기장 추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 체육계가 폭력 불감증에서 완전히 치유될 수 있도록 철퇴를 내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