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국정공백에 하반기 한국경제가 시계제로에 빠지게 됐다. 경기회복의 훈풍이 제대로 불기도 전에 소프트 패치(soft patch) 현상을 보이면서 당국의 발빠른 대응이 시급해졌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두달간 사실상 정책 실종 상태다.
이달 들어 경제예측기관들이 내놓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대부분 하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기존 3.9%에서 3.7%로 내린 데 이어 현대경제연구원은 4.0%에서 3.6%로, 금융연구원도 4.2%에서 4.1%로 각각 낮춰잡았다. 국내예측기관들의 올해 수정된 전망치의 평균수준은 3.7% 정도로 잡힌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도 3.7%이다. GDP갭 상 실제성장률에서 잠재성장률을 뺀 GDP갭 상으로 사실상 제로 상태다.
한국경제를 둘러싼 어두운 전망은 민간소비 등 내수가 악화된 영향이 크다. 25일 한은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여파로 지난 4월 중 개인들이 국내에서 물품이나 서비스 소비에 쓴 신용카드 승인액은 하루 평균 9768억원으로 작년 4월(9892억원)보다 124억원(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 위험도 경기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이날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HSBC는 “작년 4분기 가계부채 증가율이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1.8%포인트 상회했다”면서 “과도한 가계부채가 채무상환부담 증가로 이어져 민간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잠재성장률 둔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가 이처럼 회복 중에 일시적으로 위축되는 소프트 패치 우려를 넘어 더블딥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총리 인선 파동으로 최 후보자가 경제부총리에 임명된 지 11일만에야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내정 직후 친박 실세로 꼽히는 최 후보자의 말 한마디에 부동산, 금리, 환율 등 주요 정책 변화 움직임이 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부동산ㆍ채권ㆍ외환 시장은 물론 재계와 산업계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정부가 인사청문요청서를 발송한 지 20일 이내에 인사청문 절차를 종료해야 하는 국회청문회법 규정을 감안하면 일러야 7월 중순에나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한다는 얘기다. 규제완화와 경제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에서 각종 경제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다 하반기 한국 경제 흐름을 전망하고 정책적인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하반기 경제운영방향의 발표 시기마저 당초 6월말에서 다음달 셋째주 이후로 밀릴 것으로 관측되면서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시장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외에도 서비스산업 규제완화, 자영업자 경쟁력 강화, 2주택자 전세소득 과세 여부, 가업승계 지원세제 개선, 1인당 면세한도 확대 등 세제 정비 등 민생현안들도 논의가 정체되거나 결정이 보류돼 표류 중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경제 정책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사 청문 등 과정에서 생기는 정책 공백을 하루라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