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압박에 직면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사실상 청와대에 떠넘겼다.
문 후보자는 23일 출근길에 정부청사 서울 창성동별관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말동안 자진사퇴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럴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조용히 제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와 향후 거취에 대한 의논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진사퇴’를 기대했던 청와대는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게 됐다. 문 후보자는 주말 동안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여권 관계자들에 “조금만 시간을 주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후보자의 출근길 발언은 사실상 이를 뒤집은 것이어서 청와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문 후보자의 이번 언급은 향후 ‘자진사퇴’를 비롯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이것은 ‘청와대의 뜻’임을 나타내게 한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후보자가 전날 ‘조금만 시간을 주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오늘 중 자진사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조용히 제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하니 조금 당황스럽다”고 했다.
지난 22일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문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사실상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새누리당 역시 이런 뜻을 김 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 등을 통해 재차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고위관계자는 “문 후보자가 오늘 중 사퇴 회견을 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이런 기류는 박 대통령이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시키고 더 이상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계속해서 바닥을 치고 있다. 리얼미터가 16일~20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에서 박 대통령의 취임 69주차 지지율은 전주대비 4.7%포인트 하락한 44.0%를 기록했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5.0%포인트 상승한 49.3%로 나타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의 인사적체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통령이 힘을 받을 수 없다”며 “국정운영 지지도가 최소한 50%는 넘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등의 전문을 살펴본 결과 ‘역사인식’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도 전문을 보고받았다.
청와대 내에선 ‘자진사퇴’ 쪽으로 다시 한 번 문 후보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일각에선 “인준 표결까지 가더라도 법적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거쳐 여론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의 한 주요당직자는 “어떻게 결론이 도출될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을 오래 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오늘 중으로 대통령의 결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