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0도를 넘나드는 여름 날씨에 혹시나 연꽃이 피어 있으면 카메라에 담아 볼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는 지난 14일 봉원사를 찾았다. 번잡한 서울 신촌의 연대와 이대 후문 쪽 언덕을 20여분 오르니 규모가 웅장한 삼천불전과 연잎으로 가득 메운 대웅전 앞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반기는 것은 짙은 녹색의 연잎뿐 연꽃은 아직 이른 듯 했다. 하지만 신록이 우거진 경전 나무그늘 아래서 한 스님에게 들은 봉은사는 천년의 역사만큼이나 곳곳이 숨어 있는 보물 창고였다.
대한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인 천년고찰 ‘봉원사’는 부유한 신도의 집을 희사 받아 반야사(般若寺)란 이름으로 889년(진성여왕 3년)에 도선국사가 현 연세대(연희궁) 터에 창건 되었다. 그러던 봉원사는 고려말 공민왕대에 활약한 보우 스님이 크게 중건하여 도량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성 하였고 조선 후기 영조에 의해 지금의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이후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봉원사 한 가운데는 대웅전이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된 대웅전 건물은 화재로 1991년 다시 지어, 단청이 뚜렷하고 화려하다. 두 마리의 해태상이 지키고 있는 앞을 지나 바라본 대웅전은 용 두 마리가 정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체로 지붕에 많은 무게감이 실려 있어 윗부분이 화려하고 중후하다.
대웅전 옆에 있는 염불당은 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아소정 본채 건물을 옮겨지은 것이다. 조선시대 서도가 추사 김정희가 쓴 청련시경(靑蓮詩境) , 산호벽루(珊湖碧樓)와 추사의 스승인 옹방강(翁方綱)의 행서체현판 무량수각(無量壽閣)도 있다. 부엌문의 신장도는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다. 그리고 대웅전 오른편에는 단일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9년여에 걸쳐 만들어진 삼천불전이 위치해있다.
봉은사는 갑신정변의 요람지이기도 하다. 제26대 고종 21년 발생한 갑신정변의 주축을 이룬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동인 스님이 5년간 머물러 이를 기리는 손가락 모양의 커다란 조각상이 있다. 그리고 사찰치고는 특이하게도 미륵전은 흰색의 현대식 건물이다. 이 곳은 우리말과 글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1908년 만들어진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가 창립된 장소로 내부에는 미륵불 입상이 봉안돼 있다. 이 외에도 담청의 색이 많이 바래 오랜 세월의 깊이 느낄 수 있는 극락전, 칠성각, 만월전 등이 있다. 명부전은 최근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는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쓴 현판도 볼거리다.
지난 6일 현충일에 '호국영령과 세월호 희생자들의 왕생극락을 위한 영산재(靈山齋)'가 봉원사에서 열였다. 영산재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으라는 의미를 담은 불교의식이다. 특히 의식과 절차가 복잡하며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돼 있으며, 지난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도 이름을 올렸다.
봉원사에서 매년 열리는 영산재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음악·무용·연극적 요소가 배어 있어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