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뮤지컬과 결혼했어요[정론]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교수ㆍDIMF집행위원장
에너지도 전염된다. 긍정적 에너지는 주변을 희망적 의욕으로 고무시키고 부정적 에너지는 달리는 사람의 발목도 잡는다. 중국의 대표적 창작뮤지컬 프로듀서 겸 연출가인 리둔 감독은 싱싱하고 밝은 에너지가 일품인데 그의 에너지에서 중국 뮤지컬의 미래가 보인다. 나와 나이도 같고 창작뮤지컬에의 열망과 노하우, 일중독 증상 등 공통점이 많아 뮤지컬을 통해 언어도 국경도 세월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는 리둔 감독은 중국 뮤지컬 종사자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우리는 뮤지컬과 결혼했다’란 말을 강조한다.
2009년, 리둔 감독이 ‘버터플라이즈’라는 뮤지컬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최초의 중국 창작뮤지컬은 큰 관심사였다. 80여억원의 제작비, 웨인 폭스와 질 마흐 등 유럽 뮤지컬 대가들과의 공동 작업, 대륙다운 무대 메커니즘 규모 등이 눈에 띄었으나 아직 뮤지컬 문법을 갖추기에는 이른 대본과 음악, 배우들의 창법, 연출력 등은 새로 탄생한 기형아를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형국이었다. 리둔 감독 스스로도 1997년부터 지속적으로 창작실험을 통해 100년 역사가 넘는 서양 뮤지컬 시장을 배우는 중이라며 보다 뮤지컬다운 차기작 ‘러브 미 테레사’를 발빠르게 선보였고 지금은 한국의 사회문제이기도 한 싱글맘과 외동 자녀의 증가로 인한 효(孝)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마마 러브 미 원스 어게인’의 지속적 투어 공연과 수정 보완 작업에 열중해 있다. 지난해 상하이 첫 공연에 초청돼 가서 봤던 ‘마마’는 끝없이 배운다는 그의 신념대로 전작들에 비해 뮤지컬 문법을 확실히 갖추는 발전을 보였으나 무대 미학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올해 대구국제 뮤지컬 페스티벌(DIMF) 초청을 확정하기 위해 1년여 만에 다시 본 작품은 연출, 안무, 무대, 조명, 영상 등의 작품 요소들이 다른 작품처럼 향상돼 있었다. 커튼콜 때 DIMF의 올해 해외 초청 프로그램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 줄 작품으로 손색이 없음에 감사의 기도라도 드리고 싶도록.
하지만 위협감이 더 컸다. 리둔 감독으로 상징되는 중국 창작뮤지컬의 이 저돌적 도약과 비상이 곧 한국 뮤지컬 시장을 덮치거나 밀어내거나 할 듯한 예감에.
최근 2~3년 사이 한국뮤지컬 시장은 콜럼버스처럼 중국을 신대륙으로 바라본다. 한국의 CJ E&M과 중국의 아주연창 문화발전 유한공사가 함께 해외 뮤지컬 ‘맘마미아’를 중국에 라이선스해 본격적인 뮤지컬 바람을 일으켰고 DIMF가 제작한 한국 창작뮤지컬 ‘투란도트’가 처음으로, 이어 ‘광화문 연가2’가 중국에 진출하고 최근 ‘김종욱찾기’가 한국 뮤지컬로서 첫 중국 라이선스를 성사시켰다. 한국 뮤지컬 제작자들에게 중국은 이미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열쇠다. 실제로 중국 뮤지컬 관계자들을 만나면 모두 한국의 뮤지컬 교육기관에서부터 스태프, 프로덕션, 콘텐츠까지 모든 면에서 한국의 전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다. 길을 열어 달라’고 한다. 그러나 리둔 감독의 초고속 작품 업그레이드의 배경을 보면 그들은 곧 한국을 극복하고 세계 시장으로 달려갈 듯하다. 대형 공연장이 넘쳐 공연장에서 직접 장기적 제작과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인프라와 자본력, 전국 투어만으로도 평생 버틸 수 있는 무한 시장과 그래서 가능한 작품의 지속 성장, 중국 정부가 직접 뮤지컬산업을 공격적으로 주도하는 든든한 배경,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의 창작 스태프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협력 작업의 진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둔 감독의 긍정적 에너지가 중국 시장의 미래를 암시한다. 프로그램북뿐만 아니라 로비까지 수정 보완 작업에 참가한 중국, 일본, 한국, 캐나다, 프랑스의 뮤지컬 전문 스태프를 나란히 소개하고 개성적 크리에이터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을 작업 과정을 프로듀서의 콘셉트와 소신으로 극복해 놀라운 작품 성과를 보여 준 리둔 감독은 라이선스로 출발해 마이너스 시장이 되어 가고 있는 일본과 한국 뮤지컬시장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제 시작되는 중국 뮤지컬시장은 창작뮤지컬시장이어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적으로 열린 작업 방식으로 뮤지컬과의 결혼생활을 충실히 이어 가고 있다.
한국의 뮤지컬 개척 세대들 또한 뮤지컬과 결혼해 평생을 한국 뮤지컬 발전에 바쳐 왔다. 그리고 이제 그 자식들인 창작 콘텐츠로 미래를 치열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 다시 신혼처럼 긍정적 생산 에너지를 회복할 때다. 중국을 한국 뮤지컬의 미래로 여긴다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