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시청률 20% 돌파, 미국 휴스턴 국제 영화제 대상, 중국제작 극장판 개봉 첫 주 1000억원 수입... MBC ‘일밤-아빠! 어디가?’(이하 아빠어디가)가 세운 기록이다. 처참한 시청률로 고전하던 ‘일밤’의 명성을 단숨에 끌어올리고, 해외에서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아빠어디가’의 중심축에는 연출자 김유곤 PD가 있다. 최근 일산 드림센터에서 만난 김 PD의 머릿 속은 ‘아빠어디가’에 대한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연출자이기 이전에 우리 주변의 평범한 아빠였다.
“예전에는 아이랑 어디를 간다는 것이 피곤하게만 느껴졌어요.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밥은 뭘 먹여야 할까, 그런거 하나하나를 고민해야하니까요. 지금은 아이랑 둘이 다니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까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요. 8살이 벌써 그러는데 지금 제대로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어려워지는 거죠. 점점 아빠가 필요한 시기가 사라지는 거에요. 그래서 아빠란 존재가 즐겁고 재밌단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어요.”
김 PD는 얼마 전 아이와 서울랜드에 다녀왔다. 지하철을 타고 그곳까지 가는 동안 아이는 조잘조잘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놨다고 한다. 그런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둘만의 커뮤니케이션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 발짝 더 아이의 세계와 가까워진 셈이다.
“사실 아빠란 존재는 아이들과 별로 대화를 안 해요. 기본적으로 쉬고 싶어 하니까요. 가족들이랑 어디를 간다고 해도 주로 엄마가 아이를 돌보기 마련이에요. 아빠는 아이가 원하는 곳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역할이 대부분이죠. 아이와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면 2박 3일동안 가족여행을 가는 것보다 단 2시간이라도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돼요. 아이도 아빠에 대해 더 많은 기억을 가질테고요.”
‘아빠어디가’는 이런 김 PD의 경험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아빠와 아이 두 사람은 다양한 장소로 떠나면서 둘만의 시간을 갖고, 그 시간을 통해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시청자들이 아빠와 아이의 이런 모습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면서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쑥쑥 커졌다.
“‘아빠어디가’ 안에 분명 웃음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단히 웃긴 프로그램은 아니에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데서 재미가 나오는 거죠. 아빠와 아이의 관계에 정답은 없지만 각자 어떤 아빠, 어떤 부모가 돼야 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에요.
지난해 초 ‘아빠어디가’의 제작을 알렸을 때 ‘1박 2일’과 ‘붕어빵’을 섞어놓은 프로그램이냐는 비야냥거림도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의 아빠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여행을 여과없이 카메라에 담는다는 시도는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신선함을 가져다줬다. ‘아빠어디가’는 순식간에 방송가에 ‘육아예능’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몰라보게 성장한 아빠와 아이들을 잠시 내려놓고, ‘아빠어디가’는 새로운 멤버를 꾸려 지난 1월부터 2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1기와 2기는 시작점부터 달랐다. 1기에서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은 2기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건 제작진이 함께 갖고 있는 고민이기도 했다.
“처음 나왔을 때만큼의 강렬함은 없어졌어요. 지금은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 출연하는 사람 모두 익숙해졌으니까요. 한번 했던 걸 다시 반복하니까 2기가 갖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건 쉬워요. 빵빵한 게스트를 섭외하고, 화려한 장소에 데려다놓으면 되거든요.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힘은 ‘진짜’에서 나오는 거에요. 재미를 위한 장치를 어디까지 넣어야 ‘진짜’를 훼손하지 않을 것인가, 연출자로서 이 고민을 끝없이 해요.”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등 다양한 유사 프로그램이 등장했지만 ‘아빠어디가’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출연자들이 순식간에 CF스타로 발돋움한 것은 물론, 지난해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중국에 수출된 ‘아빠어디가’ 포맷 역시 대박을 냈다. 이미 ‘아빠어디가’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가 된 프로그램만이 장수할 수 있어요. ‘아빠어디가’의 브랜드 파워는 시청자들의 공감대에서 나왔죠. 그런데 그걸 유지한다는 것이 어려워요. 예컨대 또다른 브랜드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계속 변형이 가능해요. 하지만 ‘아빠어디가’는 여행이란 틀이 이미 정해져 있죠.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해결책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만큼 어려운 고민이 많이 되는 프로그램이란 거죠.”
‘아빠어디가’에는 이제 정웅인-세윤 부녀가 합류한다. ‘한국의 수리 크루즈’란 수식어를 갖고 있는 정세윤의 ‘아빠어디가’ 합류는 많은 시청자들이 예전부터 바라던 점이었다. 제작진 역시 새로운 가족이 가져다 줄 프로그램의 변화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세윤이는 동생이 두 명이나 있다보니 맏이같은 구석이 잘 보이더라고요. 작년의 지아가 새침한 매력이 있다면 세윤이는 털털하고 편안한 매력이 있어요. 등장하자마자 동생들이 세윤이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더라고요. 민율이나 리환이가 대표적이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과거 홍일점이었던 빈이가 한층 여성스러워졌어요. 그런 변화가 재밌어요.”
김 PD는 ‘아빠어디가’를 하나의 커뮤니티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 커뮤니티에 정웅인-세윤 부녀가 들어오는 것이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이미 형성된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 보여주는 과정이 다시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웅인 씨는 딸만 셋인 아빠에요. 전혀 새로운 타입의 아빠가 등장하는 것이죠. 연극배우로 출발해서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는 점에서는 성동일 씨와 비슷해요. 연령으로도 성동일 씨 바로 다음이기도 하고요. 그럼 아빠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겠죠. 아빠들끼리의 변화, 세윤이가 가져다 줄 변화,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 등이 ‘아빠어디가’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사진제공=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