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고액 연봉을 바라보는 눈

입력 2014-05-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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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ㆍ프리덤팩토리 대표

등기임원들의 보수를 공개한 이후, 고액 연봉자들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한 게 뭐 있는데 몇 십억씩이나 되는 돈을 받아가느냐는 의문과 비난들이다. 남의 일에 대한 관심과 질투가 많은 나라인지라, 연봉공개자들이 겪는 불편과 부담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클 것이다.

벌써부터 고액 연봉자들 사이에서는 공개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다. 총수나 총수의 가족들은 비등기임원으로 지위를 바꾸거나 또는 임원으로서의 보수를 받는 대신 비상장 계열사 주주로서 배당을 받아 현금 수요를 충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전문경영자들이다. 그들은 공개를 피하기가 어렵다. 현금 대신 사택을 제공받는 등의 방법으로 공개되는 보수의 액수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급여는 공개되어 대중의 비판에 노출될 것이다.

소득을 공개당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이다. 왜 그만한 소득을 버는지 설명해야 하고, 또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도 설명해야 할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부 요청이 늘어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소득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등기임원들은 온 세상에 소득이 공개되었으니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런 만큼 등기임원이라는 자리의 매력도 줄어든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노력도 줄기 마련이다. 걱정되는 것은 이제야 싹을 틔우기 시작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전문경영인들이 파격적인 연봉을 받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그 이전까지 한국의 월급쟁이들은 대부분 연공서열에 따라야 했다.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튀는 연봉을 받기는 어려웠다. 연봉이라는 개념조차 낯설었다. 월급사장은 사장일지라도 그저 연공서열에 따르는 직장인이었다.

보수가 그렇다 보니 일하는 태도 역시 그러했다. 미국의 한 경영학자가 일본의 CEO들을 관찰한 후 마치 관료처럼 행동한다고 했는데, 한국의 사장들이 바로 그랬다. 일본 경영자들이 연공서열제 때문에 관료화되었듯이, 한국도 연공서열제가 고용된 경영자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해서 자기에게 이익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자가 드물었던 것도 이와 같은 연공서열식 보수체계가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연공서열식의 보수체계는 월급쟁이 ‘부자’가 나오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큰 돈을 벌려면 고용 사장이 아니라 자기 사업을 벌려야 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의 보수는 이윤이었고, 이윤은 연공서열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 성과지향형 보수체계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외환위기는 그 과정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외국계 자본들이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또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화하면서 10억원 넘게 받는 CEO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남의 회사에 취직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10여년 전부터는 그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연봉 격차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어림없는 수준이지만 어느 정도는 성과 지향적 보수체계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경영자들도 관료티를 조금씩 벗기 시작했다. 윤종용, 진대제, 김정태 같은 ‘스타 CEO’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연봉 공개로 인해서 이같은 추세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될 것 같다. 벌써부터 노동단체나 시민단체들에서는 CEO의 연봉을 직원 평균 연봉의 일정 배율 이내에서 제한하자는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연공서열식의 발상이다. 그렇게 되면 전문경영인 중에서 스타 CEO는 나오기 힘들다. 월급쟁이 부자가 되기도 어렵다.

한번 시작된 연봉공개 제도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성공한 자들의 보수를 깎기보다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국민 각자 그렇게 되겠다는 자극제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 뛰어난 전문경영자들이 나올 것이고 기업의 성장동력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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