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빠른 근대화와 경제성장 속에는 그런 비밀이 있었다. ‘워커 발’의 ‘군기’가 안전시설과 안전장치를 대신했고 사고는 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건설부문만이 아니었다. 군, 산업현장, 대중교통시설 등 사회 곳곳에 이런 일이 만연했다. 전태일의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피복 노동현장의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이나 이황화탄소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원진레이온 사건 등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다.
정부는 이 모든 것을 감추거나 축소하는 데 일조했다. 때로 관계 공무원의 목을 치기도 하고 위령탑을 세운 뒤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니 그렇게 했을 뿐, ‘싸고 빠르게’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좋게 말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하자. 먹고살기 위해, 또 잘 살아 보기 위해 그랬던 일이었다고 하자. 그 덕에 수출 잘 해서 오늘의 이 나라가 되었고, 고속도로건 지하철이건 싸게 이용해 왔지 않느냐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만큼 살게 된 데다 민권도 크게 성장했다. 무엇보다 국민이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싸고 빠르게’의 가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그 앞에 놓을 만큼은 되었다.
그러나 수십년 굳어 온 관행과 문화다. 각종의 이해관계까지 복잡하게 물려 있다. 마음 한 번 먹는다고 바로 바뀌거나 고쳐질 일이 아니다.
한 예로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전 선박의 구조변경을 금지하고, 변경된 구조를 다시 원상태로 돌리게 했다고 해 보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선박회사들과 그 조합은 그야말로 목숨 건 로비를 했을 것이다. 법 개정을 막아 줄 국회의원이나 법무법인을 찾아 나섰을 것이고, 싼 운임을 원하는 승객과 화주들을 자극하기도 했을 것이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반대와 저항이 아니다.
어려우니 그만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단단한 각오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과 이들과 얽힌 전ㆍ현직 관료집단, 그리고 이들과 연계돼 있을 정치인들과 전문가 집단 등 삼중, 사중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안전문제의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가 이 만한 역량을 갖고 있을까? 대답은 분명 부정적이다. 다른 부처들과 같은 지위를 가진 기관일 뿐이며, 수많은 법과 규정에 묶여 있는 관료조직이 주를 이루고 있는 기관일 뿐이다. 그런 역량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니 그 이름을 어떻게 바꾸고 그 권한을 어떻게 규정하든 안전문제에 관한 한 홍수대책 등 예전에 다루던 일을 하는 정도로 뒷걸음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실수는 여기에 있다. 정말 강한 의지가 있었다면 기존의 문화와 관행을 뛰어넘을 수 있는, 또 삼중, 사중의 방어망을 뚫을 수 있을 정도의 기획을 했어야 했다. 아울러 그에 맞는 추진체계와 관리체계를 갖췄어야 했다. 지금 와서 ‘해수부 마피아’가 어쩌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설픈 일이다.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짧지 않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다시 한번 강조하자. 행정과 정책과정을 단순하게 보지 마라.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이야기하면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울러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또 구조를 제대로 못한다고 욕하지도 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방향을 바로잡아 이해관계자와 관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일이다. 모두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이라는 말이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총리와 장관을 다 바꾼다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을 바꾸기에 앞서 안전문제의 구조와 이해관계 집단이나 관료들의 행동양태부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라.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고민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