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사양산업으로 간주되던 문구업계가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진 문구가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ICT 기술을 입으면서 ‘스마트 문구’로 변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스마트 문구산업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뒤늦게 태동 단계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아직 산업이 활성화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분석이다. ICT 강국에 걸맞게 일부 제품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적절한 지원과 관심만 있다면 산업은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다시 문구로 = 최근 문구업계는 심각한 실적 악화에 허덕이고 있다. 저출산 추세로 문구류의 최대 소비자인 학생이 줄었고, 스마트 기기 대중화, 사무 전산화까지 겹치며 전통적 문구 사용률은 급감했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모나미의 지난해 매출액(1676억원)은 전년 대비 36.2% 급락했다. 모닝글로리도 2011년 456억원, 2012년 451억원의 매출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바른손은 실적이 악화되면서 회사의 근간이던 팬시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자회사로 분리시켰다. 국내 문구 시장 규모는 대략 4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10%씩 줄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문구 유통업체만 둘러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문구류 트렌드를 주도하는 업체인 교보문고 핫트랙스에는 문구코너가 대폭 줄고, 그 자리를 화장품 판매대가 차지했다.
사양산업의 길에 접어든 문구업체들은 게임·소프트웨어·금융업·패션사업·의료에 애견사업까지 손대며 사업 다각화로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오히려 불경기로 매출이 더 하락하는 악순환을 겪었다.
이러한 문구업체들이 ‘다시 문구’, ‘그래도 문구’를 외치며 문구 본연의 경쟁력 강화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다. 문구를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아날로그의 전형인 문구에 ICT를 얹은 스마트 문구가 탄생한 배경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 = 스마트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모든 산업이 이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디자인·반도체·통신·LCD 등 스마트 기기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재료를 비롯해 시계·안경 등 착용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까지 등장하며 합종연횡하고 있다.
문구도 스마트 문구라는 이름으로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스마트 문구가 가장 발달한 곳은 일본이다. 대표적 제품으로는 킹짐이 2011년 출시한 샷노트(SHOTNOTE)다.
샷노트는 클라우드 메모 서비스인 에버노트의 전용 앱을 이용한다. 이 앱을 노트에 표시돼 있는 특정 표식에 갖다대면 자동으로 이 부분을 인식, 스마트 기기에 최적화된 크기로 변환해 에버노트의 클라우드에 사진 파일로 저장한다. 이 노트는 ‘샷노트 100만권이 팔린 이유’라는 책이 출간될 정도로 이슈가 됐다.
샷노트는 일본에 스마트문구 열풍을 가져왔다. 12개에 달하는 문구업체들이 킹짐과 제휴를 맺고 다양한 스마트 문구를 개발, 출시하고 있다. 나카바야시(Nakabayashi)라는 업체는 마커로 영역을 표시한 후 전용 앱으로 스캔하면 그 영역만 잘라 인식해 신문을 저장하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들은 특히 문구유통업체에 스마트 문구 코너를 따로 배치,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배려했다.
미국 노트 제조업체 몰스킨 역시 2012년 에버노트와의 제휴를 통해 ‘스마트 노트북’을 출시했다. 스마트 노트북에는 색깔별, 형태별 스티커가 있는데, 필기한 노트에 이 스티커를 붙이고 전용앱으로 스캔하면, 지정한 폴더에 자동 저장하는 방식이다. 3M의 부착형 메모장인 포스트잇은 색깔별로 에버노트 특정 폴더에 연동시킬 수 있는 상품을 출시했다.
◇우리나라는 걸음마 단계 = 우리나라 스마트 문구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기술력은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다. 대표적으로 펜앤프리(PNF)가 출시한 전자펜 ‘롤롤’을 꼽을 수 있다. PNF의 전자펜은 노트에 특수 클립을 꽂아 초음파를 통해 전자펜의 움직임을 인식, 필기한 그대로를 PC나 스마트 기기에 실시간으로 옮겨준다. PNF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애플과 협업을 통해 스마트 기기용 전자펜인 ‘이퀼(equil)’을 애플스토어에 공급하고 있다.
모닝글로리도 스마트 문구 시장에 뛰어들었다. 모닝글로리는 지난 21일 ‘테이크아웃 노트’를 출시했다. IT업체인 톤스와 제휴해 1년 반 만에 개발에 성공한 이 제품은 손글씨와 디지털 기기의 장점을 접목했다. 손으로 필기를 한 후 노트 안의 마커(marker)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전용 앱이 노트 영역을 자동으로 감지해 그대로 스캔한다. 스마트폰에 노트 필기 내용을 저장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텍스트나 스티커 추가, 음성녹음 등 부가 기능도 사용할 수 있다. 톤스는 현재 모나미와도 제품 출시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톤스 이정 대표는 “해외 스마트 문구가 하나 둘 우리나라에 상륙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문구업계도 힘을 합쳐 스마트 문구 플랫폼을 표준화해 세계시장 진출을 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