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여에 걸친 영화 관람 후 딸아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의견과 함께 ‘찌라시’의 정확한 의미, ‘사설 정보지’의 존재 여부 등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찌라시’의 어원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발음이 곱지(?) 않은 게 도무지 우리말 같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찌라시’. 이는 전단(傳單·리플릿)의 일본어 ‘ちらし’의 잘못된 우리말 표기로 외래어표기법상 ‘지라시’라고 써야 맞다. 대중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배포하는 선정적인 광고를 의미한다. 최근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담은 인쇄물이라는 뜻으로 더욱 잘 알려졌다. ‘찌라시’의 김광식 감독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제목을 결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바르지 못한 표기법에 따른 논란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의 ‘한글 파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반창꼬’(2013·반창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님은 먼곳에’(2008·임은 먼 곳에) 등 한글맞춤법에 위배되는 영화 제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TV 드라마 또한 이에 못지않다. ‘열라’(정말), ‘쌤’(선생님), ‘밀당’(밀고 당기기), ‘신상’(새로 나온 물건) 등 잘못된 언어와 저속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요의 경우 제목과 가사에서의 ‘맞춤법 무시’ 현상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글과 영어를 섞은 정체불명의 노래 가사가 허다하다. 한 아이돌 그룹은 소리나는 대로 쓴 듯한 노래 제목으로 한동안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중문화 관계자들은 작품과 관련해 한글맞춤법 논란이 일 때마다 하나같이 예술적 창의성 때문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작품의 기획 의도, 개성 등을 대중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문화계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품의 개성과 다양성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대중문화가 청소년 등 우리 미래 세대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특히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과도한 줄임말, 비속어, 은어 등이 판을 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중문화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단하다.
전 세계 언어학자들로부터 최고의 과학적 문자로 칭송받는 우리말이 아닌가. 올바른 우리말로 제작된 수준 높은 문화 콘텐츠의 제공이 절실한 시기다. 문화계가 바른 언어 생활을 추구하는 데 앞장서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