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명문가의 아버지 하면 대부분 뜻을 굽히지 않는 강직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물론 권위적이고 완고한 아버지도 있었을 테지만 조선시대 명문가 아버지들은 이런 선입견과는 달리 오히려 배려하고 섬세하게 돌보는 이른바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소유한 인물들도 많았다. 퇴계는 요즘의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소유한 인물로 평가된다. 퇴계가 40대에 한양에 머물면서 고향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몽의 신발을 한손이 갈 때는 사 보내지 못하겠다. 한스럽다. 이번에 귀걸이는 함께 보낸다. 말린 꿩, 조개, 민물고기, 미역과 백지 한 권 등을 보낸다.” 며느리에게 귀걸이와 참빗을 사 보내는 시아버지, 손자에게 신발을 선물하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자애로운 사랑이 넘치는 대목이다. 퇴계의 모습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자녀와 후손들에게 ‘사람 챙기는 본보기’를 솔선수범해 보여준 것이다. 퇴계는 주위 사람, 특히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가족부터 극진히 챙겼다. 선물은 자신이 답례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선물’만 받았다. 받은 선물은 반드시 가족과 친인척뿐만 아니라 제자나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퇴계는 열일곱 살 된 맏아들에게 뜻이 돈독한 친구와 함께 절에 가서 굳은 결심으로 맹렬히 공부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퇴계도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요즘 부모들처럼 극성스러울 정도였다. “어제 너의 초사흗날의 편지를 보았다. 무사히 공부하고 있다니 위로가 된다. 지은 글이 등수에 들지 못한 것은 네가 탄식하고 안타까워하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네가 평일 놀고 게을렀던 결과이니, 이것 또한 무엇을 나무라겠는가? 다만 마땅히 한층 더 공부에 힘써 진보할 것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며, 스스로 자신을 잃고 붓을 꺾어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은 1551년 쉰한 살의 퇴계 이황이 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퇴계는 ‘착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했는데 자녀들에게 학문에 뜻을 둔 착한 제자들과 ‘공부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김성일과 우성전이 지금 ‘계몽’을 읽으려 한다더구나. 너는 벌써 ‘주역’을 읽고 있지만 ‘계몽’도 읽지 않을 수 없으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곧장 절에서 내려와서 이들과 함께 ‘계몽’을 읽는 것이 아주 좋겠다.” 그는 학문을 익힐 때 혼자 하는 것보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학문을 닦는 것을 중시했다.
퇴계는 자손들에게 ‘빚보증은 절대 서지 말고 또 이자놀이를 절대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빚보증을 서거나 이자를 받는다면 인간관계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