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관료들은 경제부총리 시스템이 가장 안정적인 때로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을 꼽는다. 경제관료에게 이른바 '리즈시절'이라 할 수 있는 경제기획원 때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으로 꼽히는 김학렬·남덕우·신현확 등 전설적인 부총리들도 이 때의 인물이다.
최근의 경제부총리는 위신이 말이 아니다. 대통령의 특별 주문으로 만들었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빨간줄이 죽죽 그어졌다. 3개년 계획의 첫 실행 과제로 야심차게 발표했던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은 집주인들의 반발에 밀려 발표 일주일 만에 땜질을 했다. 여기저기 치이기 바쁜 샌드위치 신세다.
경제부총리라는 점도 같고 당시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이번에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있는데 뭐가 달라진 걸까. 관료들은 경제부총리가 가진 힘의 크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말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상정된 경제안건 중 90% 이상을 수정 없이 통과시킬 정도로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수장의 권한을 상당부분 청와대 안에 두고 있다. '진짜 컨트롤타워는 경제수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만 해도 그랬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갑자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꺼냈다. 현오석 부총리가 준비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음날이었다. 대통령이 계획에 대해 부총리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신년 계획에서 제시한 '474'(경제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 비전도 마찬가지다. 현오석 부총리는 이 가운데 고용률 70%에 대해서만 '유일한 목표수치'라고 했었다.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부랴부랴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지방선거를 앞둔 '윗분'들의 상황 때문이라는 뒷 말이 나온다. 정치인에게는 경제를 호소하면서 경제정책은 정치논리에 따라 뒤집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공공기관 개혁은 어떤가. 기재부가 낙하산 방지 대책을 마련해 보고한지 채 며칠만에 몇몇 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투하됐다.
이런 것들이 모여 여론은 경제부총리를 질타하고 불신한다. 문제는 경제부총리 개인의 위신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부총리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정부의 경제정책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진짜 약임에도 가짜라고 믿으면 효과가 나지 않는 '노시보'(Nocebo) 효과는 경제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지금 경제부총리가 처한 상황에는 청와대의 책임도 크다. 그저 여론의 비난을 막아낼 '바지 부총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차라리 경제부총리 제도를 없앨 것이 아니라면 청와대가 지금보다는 먼저 경제부총리의 면을 세워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위신을 떨어뜨리고 힘을 빼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옛 전설적인 경제부총리들을 데려온다고 한들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